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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밸리 판타지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데스밸리 판타지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시경
  • 단편 당선작
    현관이 사라진 방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현관이 사라진 방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방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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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 사유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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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관철시키는 마음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꿈을 관철시키는 마음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민윤지
  • 단편 수상작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 2022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 2022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이근자
  • 단편 당선작
    엄마의 이름은 반다 : 2022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엄마의 이름은 반다 : 2022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작 서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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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침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여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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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편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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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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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과거를 현재로 만드는 장인의 솜씨 AI가 소설을 쓰겠다고 덤비는 시기이다. 앞으로의 소설 영역은 어디로까지 확장이 되는 걸까? 문득 나는 '고유성'에 대해 떠올렸으며 그것은 한국적 소설의 원형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늘 궁금했던 점은, 왜 한국적 이야기의 흐름에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 소위 ‘단절된 공백’처럼 여겨지는 시기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별다른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고, 늘 갈증만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엄창석 작가의 소설 두 편, <해시계>와 <비늘천장>을 만났고, <비늘천장> 작가의 말에서 그 질문에 대한 첫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탈로 칼비노, 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옛것을 소재로 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한국의 작가’이니만큼 우리 옛것으로 된 소설 한 권쯤은 가져야겠지, 하고 생각했다. 다만, 소설문학이 서양 근대의 산물이라서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근대성을 구가할 수 있었던 반면에 우리의 옛날은 근대적이지 않아 소설문학과 어울리기 힘들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근대 이전의 이야기를 현대의 문제로 끌고 와서 작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설 구상에 있어서, 미래 소설도 어렵지만 과거 소설은 다른 차원으로 어려운 것 같다. 비유를 들자면, 미래 소설이 새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라면, 과거 소설은 이미 살고 있는 집을 다시 세팅하는 것과 유사하달까.  과거 소설을 쓸 때, 소재 추출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한 차례 세팅된 바 있는 요소들을 어떻게 하면 낯설고 새롭게 세팅할 수 있을까. 방대한 배경지식뿐만 아니라 시대적 감각, 언어적 감각, 기타 등등.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해시계>는 그런 점에서 과거를 소재로 하지만 현재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은 더 이상 과거의 시점에 한정되지 않는다. 낯선 차원으로 접근하여, 과거, 현재, 미래로 한정되는 시공간이 아닌, 소설 속에서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이 구축된 것 같다. 그러하기에,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부분은 주제적 의미였다. 솔직히 첫 부분에선 과거 배경이 자세히 묘사되므로, 단순히 과거가 배경인 역사 소설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적 경로를 따라가다 보니 작품 속에 ‘어마무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은 평소 내가 가져온 궁금증인, 한국적 이야기의 원형에 대해, 일견 첫 해갈이 되는 지점이 되었다.  아, 이런 소재를 이렇게 소설화할 수도 있는 거구나! 값진 소설을 만난 기분에 정말 기쁘다. 작가는 ‘한국의 작가’가 되기 위해 단편 7편을 계획한다고 한다. 그 첫 번 째 작품이 <해시계>이며, 두 번째 작품이 <비늘 천장>이다. 작가의 언급대로, 꼭 <해시계>를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조만간 <비늘 천장>도 읽고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 과거로 불리는 시간의 지층을 앞장서 탐사하고, 그곳에 묻힌 소중한 이야기 원석을 현재에 맞게 재가공하여,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활짝 열어준 작가에게 감사의 뜻 전한다. 곧 나머지 다섯 편도 만나게 되길 고대해 본다.  유안
사막에서 '사갈'을 만날 때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세상을 여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어떤 여행보다 낯설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그러한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내 고정관념으로 구축된 제한된 세상을 벗어나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박상우 작가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스토리코스모스를 통해서였다. 처음엔, 어떤 경로를 예상치 못했으나 스토리코스모스에 수록된 총 26편의 작품 중에 18편을 읽고 나니 나름의 감상 경로가 생겼다. 나머지 8편까지 다 읽어 보려한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부터 시작된 경로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 <청춘의 동쪽>,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독서형무소> 등으로 이어지는데, 최근 읽은 작품은 <사랑에 관한 몇 개의 시선>과 <존재의 사막>이다.  ​최근 연달아 읽게 된, <사랑에 관한 몇 개의 시선>과 <존재의 사막>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 감상을 적고자 한다. (개인적인 감상이므로 작가님께 양해를 바랍니다.)  <사랑에 관한 몇 개의 시선>에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사뭇 낯설고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무엇보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영상미는 압권이었다. 독특한 소설적 구성 때문인지, 소설에 입체감이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몰입감도 좋았고 여운이 많이 남았다.  이후 <존재의 사막>을 읽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이미지 소설'이라고 한다. 앞서 <사랑에 관한 시선>이 '영상 이미지'가 강한 소설이라면 <존재의 사막>은 '시적 이미지'가 강한 소설이다. 소설은 '파울 첼란'의 <후광>이라는 시의 인용으로 시작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 버린 사막, 모래알 같은 존재들, 그럼에도 그들은 사막에 존재한다. 그처럼 파편화된 존재들이 모여 사막을 이룬다. '고독이 뿌리내린 사막(-본문 인용)'에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까. 기존의 '소설'에 관한 고정관념으로 '소설 읽기'를 시도하려다, 내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작품.  그간 소설을 통해 인간과 인생의 문제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다면, 최근 읽은 두 작품을 통해서는 그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었다. 시각적 영상과 이미지가 대세인 시대, 활자 예술인 소설이 구축할 수 있는 시각적 세계관은 어디까지일까. 검은 모래 폭풍이 부는 사막을 걷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작가의 다음 소설이 기대 된다. sunny
호저클럽을 읽고 제목이 참 특이했습니다. 호저가 뭐였는지 잘 기억이 안나 검색을 해보니, 아 고슴도치 같은 동물이었구나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왜 호저클럽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끝까지 다 읽었을 때 비로소 이해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어떤 인물이 누가 누구였고,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정립해보려고 스크롤을 몇 번 올렸습니다. 제 성격상 글을 읽다 인물이 4명이 나오면, 머리 속에 방 4칸을 만들어두어야 하거든요ㅎㅎ. 각각의 칸에 그들이 했던 대화와 성격을 차곡차곡 쌓아보려고 했는데,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글을 읽을수록 방을 나누었던 칸막이들이 흐릿해져 갔습니다. 누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나누어보다가, 나중에는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누구에게 가까웠을까 이리 저리 대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제이였고, 어떤 때는 내가 엘에 가까웠습니다. 그게 참 재밌었습니다.  예전엔 눈치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ㅡ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남들이 불편하게 느끼면 어떨까. 내 말이 상대방을 찌르면 어떡할까 해서 ㅡ 카톡하기 전에 글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합니다. 썸 탔던 연애 초기마냥.. ㅎㅎㅎ 그래서 해야 할 말을 되삼킨 적도 많아집니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내 의견을 낼 수 있는 그 아슬아슬한 최적의 밸런스를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 이 짧은 리뷰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네요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몰라서 ㅎㅎ​ 마음안자리
미안하다, 사랑한다~ <여분의 사랑>이 글의 제목을 보고 여분 만큼 남았다는 게 맞을텐데. 뭔가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내가 미처 거기까지는 못 간걸까~그래도 할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을.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헤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희 처럼 많은 이별 앞의 연인들은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나도 그랬던 것 같다.최대한 쿨하게~최대한 아무렇지 않게~그러고 싶은데 그렇게가 되지 않아..아프고 아프게 했던 ... 아니면...그냥 연기처럼 지워지기를 바랐던...서투른 이별 때문인지, 사랑의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이 둘이 같은 건지...사랑에는 별로 소질없는 나로서는 분간이 안 간다.서툰 이별 때문에 잔인한 게 어설프게 질질 끄는 것 보다 낫다고 여겼던 것 같다.그런데 우주를 지켜 보고 이별하는 다희는 참으로 어른스럽다.어쩌면 우리 주위에 많을지도 모를 떠돌이 개처럼우주와 다희가 많을지도 모르겠다.어린 우주는 아직 자라지 못한 채그 방에 잠들어 있는건 아닐까.작가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끌어내는 시각과표현력을 가진 사람이 맞구나 싶은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갔지만지난 날 서툴렀던 나를,만나 왔던 많은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었다.여운이 남을 것 같습니다.지나온 많은 아이들 생각에...관해
사과와 러시안 블루... ​제목 앞에 또 멈칫 했다. 안락사라는 단어가 조금 망설여졌지만,작가의 전작들을 읽었기에 손이 먼저 나간다.   <고양이 안락사>일주일을 못 넘긴다는 의사의 말에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누나와 시골로 온 주인공.그리고 마치 일부러 그렇기라도 한 듯 오해 받을 만한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기회로 삼은 사람.눈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눈치가 아주 정확한 친척.불길한 예감을 잘도 예견하는 고양이...한결 같은 어머니의 사랑이...그럼에도 눈앞에 그려질 것 같은 시골의 고즈넉 하고 평온한 풍경이...역시나...    나는 이렇게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고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나도 친 자매나 다름없는 사람을 코로나로 잃으며 잃은 아픔 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에 분노했었다.<사람과 사람 사이>를 읽을 때는 그런 슬픔을 위로 받고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면   <고양이 안락사>는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바로 쓰기가 힘들었다.나 또한 부모님의 죽음 앞에 한 마디도 못하고 보내 드려야 했던 시간이 떠오르며작가의 글은 잔인하지만, 정직하게 내 마음을 관통했다.그래도 깔끔한 문장이라...덜 아프다.적확한 표현으로 빠르고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   이번에도 차마 내 입으로 말 못할 그런 나의 치부가 주인공을 통해 드러난 것 같다.   또한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인 양 말하기 보다는이런 감정에 닿아 봤는지, 그런 절박함까지 자신을 몰아가 보고믿음으로 환하게 웃은 건지...적어도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여기게 된다.   누가 내게 조언을 했었다.끝까지 가 봐~정말 그 끝까지 생각해 봐~ 겁쟁이인 나에게 그 사람이 한 말을 <고양이 안락사>가 한 글자 한 글자 가르쳐 준다.   적어도 그 절망의 끝에서 안락함을 얻은 자, 과연 누구일까.   ​팽팽한 긴장감을 공간의 섬세한 묘사와 컬러감의 대비로 글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게 하는 작가의 필력은늘 매력이 넘친다.관해
이제 나도 떠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 문장을 보자 마자 또 혼자 숨 죽이고 웃었다.어떻게 이렇게 허를 찌를 수 있을까?아무도 하지 못한 말,아무도 하고 싶지 않지만 궁금했을 그 말. 작가의 다른 글에서 처럼 인간의 욕망을 그저 담담하게진실하게 직시하며 따라가다 보면 정말 무언가 있다. 나도 작년 여름 가장 친한 언니를 코로나로 잃었다.그 때 이 글을 봤다면 어땠을까?나는 그 죽음 앞에 여러가지 이유로 분노하고 있었는데..이 글을 봤다면 분명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사실 그런 큰 슬픔 앞에서 너무 진지한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고역일 때가 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고안해 낸 슬프지 않은 저장장치라는 말이,정말 공감이 된다.대체 작가는 이런 장치를 얼마나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까?아니면 갖고 있을까? 코로나를 통해 맛본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 시스템.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던 그 현실을 작품을 통해 다시 보며이렇게 사실적이면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작가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떻게 변했을까?어떤 이는 더 돈 버는 일에 매진을 하고,어떤 이는 더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고어떤 이는 여기 저기 기웃 거리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고어떤 이는 더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것이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원래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다.달라진 것은 단지 통제된 사회와 개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외형이 아니었을까? 전자 팔찌를 채우는 발상. 개인의 삶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글이었다.지난 코로나 기간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글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나는 이런 상황이 또 온다면 그때는 무엇을 할까? 혼자 중얼거리다 자정이 훨씬 넘어 잤다.꿈 속에서 대답했다"나도 글을 쓸래" 코로나 동안에도 나는 먹었고, 잤고, 돌아다니고 할 것은 다 했다.어쩌면 더 활발히 사람들이 없는 틈을 비집고 다 했는데...남긴게 없다.이젠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겁하지 않게 살고 싶다,고요한 작가의 글은 그런 것 같다.그냥 작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그런 사람이 비겁해 지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방법을알게 하는 힘이 있다.  나도 그녀를 내 마음에서 온전히 떠나 보내기 위해 슬프지 않은 저장장치​를고안해 봐야 겠다.  관해
사랑에 관한 독특한 해석 김솔 작가의 소설적 세계관을 좋아하는 독자이다. 스코에 올라온 <말하지 않는 책>이 언어에 관한 낯선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걷는 여자, 걷는 남자>는 사랑에 관한 낯선 세계관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어떤 경로를 거치며, 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흔히 사랑은 인연 혹은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또한 사랑의 호르몬으로 기인한 것이라는 과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 최근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고 한다. 30년 넘게 유지해 온 과학계의 정설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영원히 이해될 수 없는, 영원한 미제로 남을 것인가.  김솔 작가의 <걷는 여자, 걷는 남자>는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해석한다.  그것은 주류를 이루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계관 속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존재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단어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걷다'일 것이다.  걸었다, 걷는다, 걸을 것이다가 아닌,  '걷다'! 이 소설이 보다 재미있었던 까닭은, '걷다'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까운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에 대해 보여주는데, 정말 많은 공감이 갔다. 또한, 작품을 통해 인류 보편적으로 내재된 선험적인 경험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사랑을 '걷다'로 접근하다니! 김솔 작가의 작품은 작가 고유의 언어를 통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세계에 접근하는 것 같다. 작가가 어떻게 언어를 다루느냐에 따라 한 단어로 하나의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김솔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에 급속도로 빠져들어 새로운 세상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걷다!  너무 앞서지도, 그렇다고 너무 뒤쳐지지도 않는, 동일한 보폭으로 걷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연인 걸까.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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