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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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 단편 당선작
    창(槍) : 2024-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창(槍) : 2024-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박은비
  • 단편 당선작
    사슴 열병 : 2024-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사슴 열병 : 2024-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김태령
  • 단편 당선작
    공동: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공동: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임재훈
  • 단편 당선작
    화이트리스: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화이트리스: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최재훈
  • 단편 당선작
    짐: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짐: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조재민
  • 단편 당선작
    아스파라거스 숲 : 2023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아스파라거스 숲 : 2023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작 강지선
  • 단편 수상작
    그네 : 2023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그네 : 2023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김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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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편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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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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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아들어갈 때 모든 면에서 낯설었다. 그래서 탁월한 소설이었다.  #낯선 구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서사를 잘게 쪼개어 흐트러뜨린 다음, 독자에게 무작위로 제시한다. 꼭 곤(坤)이 가지고 노는 직소 퍼즐 같다. 독자는 하나씩 주어진 퍼즐 조각을 살펴보며 전체의 이미지를 그린다. 채워지지 않은 빈 곳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다. 마지막 한 조각을 끼워맞춘 뒤에야 비로소 그림은 완전해진다.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지는 느낌. 이 소설은 갈등-위기-해결이라는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를 철저히 배반하고 있다.  #낯선 인물 이름조차 낯설다. 성별을 짐작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잘 쓰지 않는 발음. 이름을 통한 선입견마저 작가는 완벽하게 차단해 버린다. 글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장치다. 주인공의 양면성이 따로 제시되면서 앞서 이야기한 퍼즐 구조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가족의 서사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사건들은 없다. 그들은 취미생활을 하고 친구와 싸우고 일하고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짓는다. 그러나 디테일이 선명하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고, 익숙하면서도 대단히 낯설다.   #낯선 어휘 먹새벽. 잦다란, 땀벌창, 자약하다. 첫 두 문단부터 쏟아지는 낯선 어휘들. 작가의 내공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흔치 않은 재료로 만들어진 물건은 때깔부터 다른 법이다. 작가의 언어는 어때야 하는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르고 다듬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는 작품이다.  #낯선 주제 작가는 말한다. "어른을 지키는 아이를 보고 싶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은 나약하고 특히 어른들은 더 나약하다는 것을. 아이가 부모를 잃고, 부모가 아이를 잃는 이야기는 지금껏 많았다. <지진광>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른도 아이에게 기댈 수 있다. 아이도 어른을 보듬을 수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한지, 옳은지, 멈춰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작품은 성공적이다.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그 물적 특성상 정지된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한계도 거기서 비롯된다. 주인공은 단지 조각났을 뿐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면의 변화를 감지한다. 언어로 만들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끼워 맞춰나가며 느끼는 작은 기쁨, 드디어 마지막 피스를 제자리에 놓았을 때 시야가 환해지는 경험. 그것은 주인공의 변화가 아니라 읽는 우리의 변화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이야기 조각들이 가지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반드시 읽혀야 한다. '읽는 행위'가 있어야만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미카
당신의 삶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은 진짜인가,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조작된 망상에 불과하고 진짜 나는 어딘가에 갇혀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내릴 수있는 답은 ‘알 수 없다’이다. 그럼, 내가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진짜’라는 표현을 쓰는지 유심히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진짜야”라는 말이 내포한 의미를 곱씹어본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두고 ‘진짜’라고 증언하는가. 누군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TV 속 스타를 보고 이런 표현을 쓴다면, 그 스타가 설령 완벽해 보일지라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가 오래도록 경험해 온 사람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쓴다면 우리는 그 대상이 누군지 몰라도 그 ‘진짜’라는 표현에 감히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어떤 인간의 진짜됨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누군가와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쌓았을 때만 우리는 ‘진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 화자는 ‘내가 평생에 걸쳐 투쟁한 대상은 X가 아니라 항상 내가 살아있는 지금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진짜 삶을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원흉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가 맺는 모든 관계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이 질문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삶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가혹한 질문 앞에서 되레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알맹이
존재만큼이나 실제적인 “나” 매번 글을 읽을 때면 단어와 문장으로 내용을 파악하려고 애써왔다. 이 단어가 여기에 쓰일 수 있구나, 이런 문장의 표현은 참 마음에 든다며 메모장을 활용해 저장했다.그럼, 영상은? 마음에 드는 유튜브 영상의 길이가 10분을 넘기지 못했고, 되도록 짧은 영상을 틀어두고 그냥 대충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혹은 다시 볼 영상 보관함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다. 존재의 사막을 펼쳐 든 순간, 눈으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단어를 나열하고, 이미지 형태로 시각화를 동시에 내 나름대로 짜깁기한 상상의 사막 이미지를 재생해 보았다. 이 소설의 장점은 글 전체의 배경이 되는 사막과 내면적 자아인 주인공이 행하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한 사람의 초상과 죽어가는 인생을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분명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난해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작가의 매력적인 문체로 표현되어 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자연스럽게 내용이 “읽힌다”고 느껴졌다.사막에 갑자기 떨어진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다 존재의 사막을 읽는 내내 사막의 갈증을 오롯이 느끼며,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싶어 미쳐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사막의 한가운데 욕망을 비워낸 주인공을 이정표 삼아 소설의 그 끝에 도달하자,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숨이 턱하고 막힌 기분이 들었다.“이 소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체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계속 사막은 죽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살아 숨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과연 죽음이 만연한 사회가 더 고통일까? 아니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고통일까? 글 속에서 인용한 시를 보면 생과 사에 대해 묵직한 돌직구 한 방을 날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인상 깊은 내용이라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살아 숨 쉬는 소설이 되는 데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당연히 소멸할 생명들은 여전히 척박한 땅을 개간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희망만 가득 찬 미래를 가득 품고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도 우리가 마주한 참혹한 현실에는 아름다운 동화 같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은 없다. 여기서 사랑, 생명이란 단어가 등장하지만, 가슴 벅찬 이것들은 너무 당연하게 소멸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흘러가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간혹 사랑 한 줌과 이따금 내리는 검은 비 한줄기에 행복을 느낀다.소설을 읽는 동안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잘 사는 인생이란 과연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삶을 살아갈까? 나는 사막의 한 부분일까?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질문들의 답은 영영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막화 되어가는 나 자신 속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한 줌의 오아시스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독자 자신에게 철학적 사유와 많은 물음을 쏟아주는 소설은 참 귀중하다. 갑작스럽게 만난 존재의 사막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며, 리뷰를 마무리해 본다.뮤에그
닮고 싶지만, 따라갈 수 없는 작가적 사고에 대하여 어떤 상황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본인이 가진 신념에 의해 견해가 달리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이 에세이는 사람들이 느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각을 제시한다. □제임스 터렐나는 작년에 원주의 뮤지엄 산을 다녀왔지만, 공교롭게도 제임스 터렐관은 방문하지 못했었다. 그때 뮤지엄 산에서 안도 타다오의 전시가 한창일 때였다.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울려져 있는 전시를 보고, 거룩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자연에 일부분처럼 건물을 짓는 안도 타다오와 제임스 터렐이 제시하는 공간의 공간에 대한 연결이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건축의 미학을 이해하기에도, 통찰력 있는 글쓰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임스 터렐의 공간에는 꼭 방문해 보고 싶어졌다.□청우헌기청우헌기에 시인들이 모여 가지각색의 의견을 토론하고 있다. 빗소리를 듣는 집(청우헌)이라 그런지, 비가 내리는 모양, 갇히는 모양, 땅에 떨어져 고인 모양 등 다양한 빗물의 모습이 유려한 작가의 문장을 만나서 청우헌기를 읽는 내내 빗소리 ASMR를 듣는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비로 쓰인 글이었다.□의식이 있는 밤"한땀 한땀 수놓은 십자수의 간격이다." 라는 문장에서 나는 깊은 여운을 느껴 한동안 그 문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적절하고도 과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몽환을 쫓아 새벽에 길을 나서는 작가는 한 장면을 목격하고, 이렇게 말한다.□하늘 거울가로수로 심어진 메타세쿼이아를 트라이앵글 모양에 빗대어 표현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해 거울을 가져다 두고 비유한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되는 글이었다.□재즈를 위한 감정영화도 액션 장면이 있어야 영화라고 칭하는 나처럼,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음악들이 좋았다. 재즈처럼 말이다. 작가는 재주가 소음의 한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들리는 음악이 아니라 만져지고 보는 존재라고 한다.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즈를 찬양하는 글을 썼을 테지만, 작가는 재즈라는 소음 덩어리라 칭한다. 그런데도 재즈에 매료된 이유를 말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재즈를 위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원영적 사고" 걸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적인 사고를 지칭하는 말 인데, 작가의 소개말처럼 글 곳곳에 숨어있는 "질문에 대한 숙고"를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은 송재학 작가의 "작가적 사고"와 통찰력을 배워가는 기쁜 하루다.뮤에그
절대 상투적일 수 없는 기이하고 낯선 사랑 이야기의 결말 이 작품은 밤부터 시작하여 오전 무렵까지 전개된다. 사랑은 빛으로서 상징되는데 이야기의 주된 배경이 되는 시간, 밤은 사랑을 상징하는 빛의 대비를 염두하고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인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일종의 불륜인 상황인데,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흥미진진하다. 턱수염과 귀찌라는 이름으로 도입부 부터 확실히 캐릭터 각인을 시키면서 둘의 기이한 행태의 사랑 담론이 펼쳐진다. 귀찌는 턱수염의 부인과 불륜 행위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턱수염이 모든걸 알고 있는 상황이다. 쇼부를 봐야 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술집에서 화자가 바라보는 둘은 비장한 분위기가 보였으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펼쳐진다.   일반적으로는 단편소설에 여러 명의 화자가 나오는 것을 피하라는 작법서의 조언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조언을 가볍게 파격하며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단편소설에서는 처음 보는 방식이라 형식도 흥미로웠지만 내용도 꽤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세 명의 화자와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중심성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화자가 바뀌는 부분이 오히려 더 작품의 메시지를 뚜렷하게 해준다.   첫 번째 화자는 술집에서 이상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이다.   그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호기심에 가득 찼다가도 이상하게 여긴다. 둘의 대화를 듣다보니 자신이 기다리는 이상한 여자에 대해서 이를 데 없이 너그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그녀에 대한 일종의 분노나 원망의 감정으로 시작했었다) 어쩌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의 다소 조금(?) 이상한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역설적인 치유 효과가 일어난 것일까. 관찰자 화자 덕분에 주인공의 관계를 더 이해하기 쉬웠고 묘사나 표현들도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남자 둘의 대화가 평범하지 않았기에 작위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귀찌와 턱수염, 나(화자)가 존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져서 흥미롭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턱수염이 비꼬거나 비아냥거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면서 봤지만, 보다 보니 이 캐릭터들은 진심이었고 그런 면에서는 작가가 캐릭터 설계를 철저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불륜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낯설게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 화자는 둘을 경포대로 태워주는 택시 기사이다.   턱수염과 귀찌는 술을 진탕 마시고 새벽 2시 40분경이 되어서 어디론가 가겠다고 택시를 잡는다. 심지어 턱수염은 자신의 부인과 어떻게 연애해야 하는지에 대해 귀찌에게 조언을 해주기 시작한다. 첫 번째 화자와는 인물도 사랑에 대한 관점도 다르지만, 일관성있게 바톤을 받아 둘의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계속해 나간다.   택시 기사는 별별 사람들을 태워봤지만, 이 둘을 보며 가증스럽고 한심하며 인생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택시 기사에게 사랑은 환각제이며 애물단지일 뿐이다.   세 번째 화자는 경포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인이다. 노인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화자는 사랑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내가 찾아다닌 건 사랑이 아니라 여자였다. 사랑과 여자가 어떻게 다르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도끼로 장작을 쪼개듯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 있다. 여자는 사랑이 아니고, 사랑은 여자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과 여자라는 말이 나에게는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말처럼 여겨진다. 여자는 오히려 사랑이라는 말을 훼손하는 대상, 아니면 사랑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대상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마지막 장소에 이르러 밤 동안 보이지 않았던 두 남자의 갈등들이 빛 앞에서 부딪힌다.   세 명의 화자와 남자 둘의 기이한 사랑들은 어쩌면 망한 사랑처럼 보인다. 경험했거나 혹은 지금도 진행 중인 사랑들. 이 둘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혹자는 자신의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이러니하게 위로받기도 하고 사치라고 여겨지기도 하며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으로 사무치기도 한다.  곳곳에 박혀있는 유머들 역시 이 작품의 톤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끝까지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끌고 가는 지점들 역시 인상적이다. 해일
그들이 향하는 곳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마치 지난 밤 꿈속에서 자매를 만나고 온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세심한 묘사 때문일 것이다. 자세히 묘사하는 필력이 느껴지는 초반부부터 흥미롭지만, 뒤로 갈수록 디테일을 찾아가는 재미도 더해진다.  티셔츠에서 발견된 언니와 주인공의 대화는 그 모든 것이 익숙한 듯 차분하고 가만하다.  암울한 상황과 싱거운 대화가 만드는 괴리감은 더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일상적인 말들이지만 둘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나지막한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들 앞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어 몰입하게 된다. 슬퍼하지 않는 슬픔이 더 강렬할 수 있구나 생각하며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면, 그렇게 작아지다가 결국 그럴 수 있지. 그렇지.’ 하면서.  이 이야기가 가진 강점이 많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캐릭터와 갈등 상황이다. 캐릭터의 역할이 분명했다. 언니는 비록 신체를 잃었지만, 동생을 위해 소임을 다하고 소극적인 주인공도 외부와 소통하는 계기를 얻어 언니의 상처를 보듬는다. 언니는 안으로 주인공은 밖을 향하는 행로를 보여준다. 정적인 분위기임에도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하는 요소도 재미를 더한다. 수의사에게 들키지 않을지, 김부장은 어떻게 반응할지 조바심을 내며 읽게 된다.   언니는 (눈을 감았는지) 기울어지며 다시 떠나가지만, 고양이가 사료를 먹는 명쾌한 소리는 생명의 소리처럼 희망의 기미를 안겨준다. 캐릭터들이 결말에서 한 단계 성숙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짓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얀바다
현실과 판타지가 이렇게 ?? 이 작품은 커플인 젊은 두 남녀가 당일치기로 춘천 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한다.문제는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내렸고, 남자는 운전이 매우 미숙했으며 둘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심각하게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작품의 시작은 상당히 경쾌하다. 꽤나 잘 읽히고 재치있는 묘사 덕분에 실소를 머금으며 읽게 된다.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남녀의 싸움을 초반부터 점점 고조시키며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연애를 해봤다면 공감될 수 있고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커플인데 근래에 싸웠던 분들은 경우에 따라 PTSD가 올 수도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전반적으로 약간은 과장된 듯한 재미있고 농도 높은 묘사들이 이 작품의 현실성과 긴장감을 극대화해 준다. 앞서 말한 묘사들뿐만 아니라 대사들의 비중이 많은 편이며 상당히 잘 쓰여졌고, 극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더 높여줘서 초반 도입부는 특히 상당히 흥미롭고 몰입감 있게 진행되었다.   도입부까지만 본다고 해도 좋은 작품일 수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사건이 이 작품의 진가를 보여준다. 판타지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자세한 설명이 없이도 현실과 판타지를 잘 연결 해냈으며 두 커플과 교차되는 중년 남녀의 경우에도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잘 끌어내서 젊은 커플 남녀가 다시 만나는 장면을 더 극적이면서 재미있게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차 한 대를 두고 이렇게 재미있는 판타지적인 장치를 쓸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놀라웠고 내가 작품을 쓸 때도 이런 방식으로 심플하게 잘 풀어내는 부분들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리를 간단히 해보자면'어떻게 하면 싸운 두 커플이 잘 화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심플한 판타지적 요소로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인상적인 부분은 두 커플이 뒤바뀌면서 교차하는 대사나 포인트들이 상당히 이 이야기의 디테일들을 잡아가면서 독자로 하여금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었다.처음에 미친듯이 비는 이 둘에게 장애 요소였지만, 이야기가 끝나갈 때는 운치 있는 그리고 좋은 빗소리로 들리게 된다. 그리고 비는 그친다. 해일
유쾌하지만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는 작품 김덕희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봤는데,다른 작품들도 비슷하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잘 읽혔다. <디에스 이라이>도 그랬지만 이 작품 역시 가볍게 읽히는 것 같은 표면을 들춰보면 그 안에 서늘한 의미들이 자리잡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갑자기 거리가 생겨버렸지만 한때 공포의 시대였던 코로나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은 펼쳐진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많이 부흥해버린 배달 업계의 리뷰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이런 소재들은 충분히 소설 뿐만 아니라 웹툰이나 다른 장르들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이 작품만의 매력을 짚어보자면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놓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미국적이지 않은 한국 지향적인 국뽕 미국인.그 부분에서 낮설음과 갈등 재미 요소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이든은 외국인 중에서도 꽤나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편이고 여자친구인 혜정에게 순종적인 타입인 캐릭터로 보인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미국 본사로 복귀해야 할 상황까지 생겼는데 혜정을 많이 사랑했는지 한국에서 지내게 된다. 부모님이 이든을 대하는 대사들이나 이든이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들이 그의 성격을 섬세하게 보여줘서 어떤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갈지, 캐릭터에 대해서도 기대가 되었다.혜정이 했던 한마디가 그를 잘 설명해주는 듯 하다.   "난 당신이 제멋대로인 남자들이랑 달라서 좋긴 한데 가끔은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기도 해."   이든은 족발집 리뷰를 창의적으로 쓰면서 사고 아닌 사고를 치게 된다. 이든의 리뷰를 본 사람들이 기대 이상으로 호응하여 이든은 용기가 샘솟는다.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한강공원에서 민폐를 끼치는 자전거 남에게 음악 소리를 줄여달라고 말하게 되는데... 리뷰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현실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게 현실임을 보여준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과거의 괴롭힘들에서 조금 벗어나 보려는 움직임뿐.   이 모든 지점들이 불균질하게 섞여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영웅도 국뽕도 아닌 것이 되고야 만다. 여자친구인 혜정은 ‘많이 바빴네’. 라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바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라는 그의 말에 따라 그에게 있었던 하루 동안의 일들은 한국의 단면을 외국인의 관점에서 낮설게 바라보기하는 듯 하다. 유쾌한 이야기이지만 속 뜻을 알게 되면 마냥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해일
담담하다 못해 지독하게 담백했던 호흡법의 매력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으로 이 작품의 첫 부분을 읽기 시작했고 시작점부터 흥미로웠다. 호흡법이라는 제목 때문에 뭔가 명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일까 라는 기대와 예상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른 소재와 분위기라 더 신선하고 좋았다.개인적으로는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중에 음식 뿐만 아니라 호흡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중요한 호흡에 대해서 화자의 삶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희주라는 막 출산한 친구와 이야기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둘이 어떤 관계였고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도입부부터 보여준다. 이야기의 출발점이 겨울이라는 배경을 활용한 것도 여러모로 적합했다고 생각된다. (겨울은 호흡이 눈으로 보이는 계절이다) 희주라는 캐릭터가 입은 롱패딩과 수척함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자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각인이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 읽었을 때는 화자와 희주 모두 여자가 아닐까 싶었는데, 점점 읽다 보니 화자가 남성으로서 희주와 복잡 미묘한 관계이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이 보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술들이 꽤 능숙하게 느껴졌으며 과거의 분량이 높지 않았는데 많은 부분들이 설명되었다. 초반에는 주로 희주의 아기에 대해서 화자가 면회가서 보고, 둘의 과거 관계들이 교차되며 나타났다. 희주의 아기는 누구 아이일까(아빠가 누구인지) 하는 궁금증도 들긴 했는데, (참고로, 중간에 사귄 남자친구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한다) 초반의 이런 호기심과 긴장감들이 이야기 도입부로서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둘의 관계들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야기의 본론과 클라이막스로 견인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축의 이야기로 읽힌다. 첫 번째로는 화자와 희주의 이야기.화자와 희주는 영화 모임에서 만났고 관계가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희주가 누군가의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 이후로 보호자 역할로 병원에서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숨을 쉬는 것을 본다. 자가호흡이 급선무라는 아기, 배달한 모유를 통해 조금씩 크고 있고 아기는 서서히 호흡을 찾아간다. 뒷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밝히지는 못하지만 화자와 아기, 희주의 관계가 달라지는 부분이 나타난다.   두 번째로는 화자의 연극과 관련된 이야기.화자에게 연극이 대체 뭔지를 묻던 이현이라는 죽은 후배 배우. 화자는 어떤 이유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연극을 그만두고 강의만 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묻고 권유해도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죽은 이현의 남자친구였던 카센터 직원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는 사실 화자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다. 화자가 연출가 뿐만이 아니라 한때 배우라는 것도.   두 개의 이야기들에서는 호흡에 대한 공통점이 있다. 아기도 숨을 쉬어야 살 수 있고, 연극에도 호흡법이 있다. 두 축은 교차하면서 화자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격하고 요동칠 수 있는 감정과 사건들을 비교적 담백하게 절제하며 써내려간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제목과 같이 삶의 호흡법에 대한 이야기로 중심성이 모아지는데, 사칠팔 호흡법에 대한 부분이 중간에 언급이 된다. 교수가 화자에게 정 가져가고 싶다면 사칠만이라도 가져가보라고 한다. 그 다음의 팔은 저절로 오는 수가 있다며. 화자는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사건과 모든 고통, 시련을 온몸으로 통과한다. 호흡으로 보내버리는 듯 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칠팔 호흡법의 말 그대로 팔초가 따라오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과연 그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까? 씁쓸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담담하게 느껴진 인상적인 결말이었다. 한동안 이 소설의 정서와 장면, 캐릭터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일
사이다 같이 청량한 소설  흔하디 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이렇게 유쾌하게 쓰는 작가가 또 있을까? 아마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소설이 매력적인 건 아마도 작가의 독특한 표현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허무맹랑한 청바지에 대해 말하려 한다며 자신 있게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작가의 패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허무맹랑한 청바지라고 생각하는 여자' 이런 독특한 표현은 소설을 처음부터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작가는 어느 문장 하나 쉽게 쓰지 않았다. 문장을 읽을 때 마다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표현이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건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이별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주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린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남자친구 집에 쳐들어가 혹시나 만나게 될 두 연놈에게 부울 콜라를 챙겨간 여자의 소심한 태도와, 자신을 복도에 내놓은 짜장 그릇 같다는 주인공.주인공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강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흔하디 흔한 인디고 블루 청바지 같이 구겨진 주인공은 상호를 만나 구겨진 자존감을 회복해 가는데,그들이 나눈 능청스러운 대화를 읽고는 작가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는 대화 같지만,상호의 말 "너랑 키스하고 싶다고 백 번쯤 생각한 거 같아."에 주인공은 몇 달 만에 웃었다. 지금 주인공에게 필요한 건 구겨진 자존감에 대한 회복이다. 작가는 상호를 등장시켜 우울한 청바지를 건강한 청바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자존감을 한방에 끌어올려 주는 작가의 능력은 훔치고 싶을 만큼 놀라웠다. 카드를 훔쳐 청바지를 산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며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살얼음 낀 매콤 시원한 열무국수 한 그릇 들이켠 것 같은 시원한 결말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작가의 신선하고 독특한 표현력에 읽는 내내 충격과 감탄이 끊이지 않는 소설이었다.​ 오백
기막힌 우연을 가장한 비극적 필연 우리가 꿈꾸는 영원히 사는 삶과 노동 인구의 한계에 대해서친구, 재즈 바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 단어의 조합을 들으면 우리는 일주일의 지겨운 직장과 잠시 이별하고 아름다운 주말의 시작을 떠올릴 것이다.소설의 도입부에 주인공 개인의 금요일 저녁 일상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중간에는 다양한 '이석사유'를 가진 인물과 얽힌 대기업의 음모론, 마지막 클라이맥스 반전 결말까지. 이 소설을 고른 이유 중 하나가 '이석사유'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자리를 비운 이유를 설명한다는 지루한 내용일 줄 알았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졌다. 또한, 작가는 100세 이상 인구 사망률 통계, 노동 인력을 대체한 외골격, 거대한 생명 연명 장치 비용 감당을 위해 현실적인 사유로 일하는 노인 인구를 보여주면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소설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대한민국 현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을 부양하는 젊은 층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은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생산연령인구가 지난 2022년 3,527만 명에서 오는 2042년 2,573만 명으로 감소한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생산연령인구의 비율은 70.5%에서 55%로 급락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년 후 생산연령 10명이 노인 8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 2022년 생산 연령 100명당 41.8명을 부양하던 부양비가 2042년에는 81.8명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혹자는 지금도 단발적인 노동 인력으로만 일하고 있는 노령 인구의 일자리 질을 높이고, 일자리 지원 사업을 늘여야 한다고 한다. 노동력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해결할 외골격이 나온다면? 정말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는 한 번 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매일 아침, 우리는 출근을 하면서 누가 나 대신 일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정년을 생각하면 평균 30년 이상, 한 직장 혹은 여러 직장을 거쳐 퇴직한다. 향후 미래에는 작가가 제시하는 생명 연명 장치를 통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비싼 유지비를 마련하기 위해 끝나지 않은 노동 지옥이라는 형벌 속에 갇힌 소설 속 인물을 보고 있으니, 처참하고도 비극적인 현실에 씁쓸함이 계속 맴돌았다.한편, 나 대신 출근한 또 다른 외골격에 대한 관리 문제점에 대한 대안의 역할로 주인공의 직업이 등장하고, 여기서 소설의 제목이 등장하면서 '자리 비움'을 해명하고 있는 여러 인물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사망 사건이 더해져, 주인공이 말하는 대기업 음모론의 궁금증을 한층 증폭된다. 나는 주인공 앞의 '친구'의 존재도 잊을 만큼 몰입해 지루함 없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소설을 읽는 내내 참신한 소재, 의문의 사건, 플롯의 구성 등 모든 게 완벽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무겁지 않게 주제를 녹여내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라 생각되었다.우리는 과연 오래도록 영원히 사는 삶이 행복한 인생인지 스스로 질문을 다시 해보면서 리뷰를 마무리해 본다. 뮤에그
죗값보다 큰 분노에 대하여 몇 해 전인가, 대한민국의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사이트가 등장하여 한바탕 논란을 빚었다. 애꿎은 사람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법이 확실히 처벌해 주지 못한 것을 대신 처리해 주는 다크 히어로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소설은 지금의 현실을 관통한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운 죄로 무참히 살해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소설 속 피해자들은 죗값을 한참 넘어서는 분노와 맞닥뜨린다. 이 분노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정교하다. 가해자들은 범죄를 숨기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도 태연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은 옳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가 먼저 있고 '벌'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벌'이 '죄'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통쾌하게 해줄 만큼'의 벌을 누군가에게 내리고 싶다는 욕망이 평범한 사람들의 잘못을 죽을 죄로 부풀리는 게 아닐까.   재미있는 픽션 정도로 넘어가기엔, 현실에도 비슷한 사례가 너무 많다. 인터넷에서 누구 하나 죽일 듯이 물어 뜯는 댓글들은 물론이요, 그 과격한 분노가 때때로 현실로 터져나오는 순간들을 우리는 몇 차례 보아 왔다. <디에스 이라이>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 요제프k
빨간 장미의 비밀이 알고 싶다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리얼리티다. 꽃 냉장고에서 시작하는 첫 장면, 꽃을 진열하고 손질하는 요령, 꽃다발을 만들어가는 분주한 손길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실제로 푸에고 꽃집에 함께 들어와 있는 것처럼 선명하고 화려하게 전개된다. 전문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자세하면서도 때로는 간단하게 툭 치고 빠진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작가의 완급 조절을 따라가며 지루할 틈이 없다.  리얼리티는 단지 배경 묘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푸에고 로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각각의 꽃들처럼 하나같이 다른 특징과 매력이 있다. 일견 깐깐해 보이는 고용주면서 빨간 장미를 극도로 싫어하는 윤 사장, 그녀와는 정반대 성향으로, 빨강이 잘 어울릴 것만 같은 중국집 사장 화린,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과 미래에 확신을 품지 못하고 방황하는 수호가 있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 꼭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인물들이 움직이고 부딪치며 이야기를 이끈다. 그래서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 캐릭터들이 어디에 도달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제목 <푸에고 로사>의 의미는 결말에서 극대화된다. 그녀는 이제 망설임이 없다. 빨간 장미의 진한 색채와 강렬한 향이 내가 있는 곳까지 퍼져오는 듯하다. 미카
자기를 추스르는 여정에 대하여 ​  작가의 말을 보고 홀린 듯 읽기 시작했다.  "만약 당신의 삶이 권태롭고 지루하다면, 불안하고 정처 없어서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내 글을 읽어 달라."  이 소설을 보면 권태롭고 불안하고 정처 없는 나의 의식으로부터 잠시라도 떠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이 소설은 주인공을 따라 잠시 여행할 수 있도록 한다. 주인공은 죄책감을 안고 스페인에 다녀온다. 분명 다녀온 이야기인데, 그 의식을 따라 독자도 함께 여행하게 만드는 필력이었다. 집에 있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과거로 자연스럽게 장면 이동한다. 그래서 그 부분을 특히 여러 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인식조차 못 할 정도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회상인데 어느새 장면이 펼쳐진다. 앞서 관련 회상을 떠올리고 대사 하나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회상을 현재 장면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딘가 에세이 같던 글이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회상을 회상으로만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부드러운 장면 전환으로 이야기를 전해듣는 느낌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듯한, 현장성이 살아나는 지점이라 좋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집에 와서는 스페인 생각을, 반대로 스페인에서의 주인공은 스페인에 몸이 있지만 어딘가 과거에서 허덕이는 모양새인데,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혀 지리멸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름대로 생각한 이유는 주인공의 사유 과정이 이별에 대해서 가볍게도 무겁게도 이야기하며 결국 '죽음'에 다다르는 그 중심이 있어서, 라고 보았다. 주인공인 나는 최악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위로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더 이상 최악을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괜찮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주인공인데도,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정처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의 직면이다.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불행의 죄책감을 한 인간이 어떻게 직면할 수 있는가. 작가는 이 문제를 관조적으로 써 내려가기 보다는 독자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여러번 읽다 보니, 주인공의 말이 마치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좋았다. 죄책감을 감당하기 힘들어 여정을 떠난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며, 유려한 일인칭 사용으로 독자가 그 여정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독자와 주인공의 거리가 가깝다 못해 밀착되는 점이라 생각한다. "오래전에 나는 외로움에 빠져 일상이 흔들릴 만큼 허우적거린 적이 있었다. 외롭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 본문 중  이 소설을 읽으며, 울컥하고 내면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엇인가 때때로 느껴졌다. 그것은 결국 주인공의 캐릭터와 상황에 부합하면서도, 다수의 독자가 느낄 보편적 감성이 드러난 문장 덕분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문장을 남발하지 않나, 반성했다. 어떤 작품을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마력은 결국 문장의 깊이에 있는 게 아닐까. "어디서부터 거짓이고, 진실인지 말할 수 없겠지만, 한번쯤은 털어놓고 싶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해도." - 본문 중​ 가까운 이에게 아픔을 말하기 어려울 때, 오히려 낯선 누군가에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을 때의 심정. 그리고 타인에게 털어 놓기가 죄책감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말. 이 소설은 한 사람이 자기를 추스르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유
티셔츠에 담긴 두 자매의 일상 판타지 티셔츠라는 제목이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읽지 않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왠지 모르게 작가의 말과 미리보기로 보다가 재밌을 것 같다는 흥미로운 접근으로 작품을 읽었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일상 판타지 작품을 스코에서 보게 되었던 지라 기대 못한 부분에서 의외로 좋았다.   작가의 말에 보면 작가님께서 이 소설을 쓰시게 된 이유도 흥미로웠는데, 본인의 작품 중에 티셔츠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으면 하는 욕망(?) 때문에 쓰셨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내가 선택하지 않으려는 이유와 반대편에서 쓰셨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쉽게 잘 쓰여있고 읽었을 때는 대중적인 재미나 접근성이 매우 좋다고 여겼다. 두 자매의 생활 판타지가 작품의 주요 분위기이자 장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가장 장점이자 독자로서 느꼈을 때 제일 좋았던 점은 시작부터 바로 사건이 던져진다는 부분이었다.바로 시작되는 사건에 <티셔츠>라는 작품의 세계로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점이 꽤 흥미로웠다.  이야기는 언니가 티셔츠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시작된다. 흥미로운 판타지적인 발상인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집 안의 배경 묘사나 두 자매의 대화들로 인해서 바로 진입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보통 습작을 쓰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소재에 천착해서 황당무계하거나 설득력이 없는 전개를 펼치게 되는데 이 작품을 재밌게 본 독자로서 도입부의 디테일한 설정과 대사들이 판타지 작품에서 독자를 견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상상을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판타지로 보여주는 점이 이유리 작가의 판타지와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티셔츠 안에 들어간다면 어떤 상황들과 반응들이 생길까, 그에 대해서 이 작품은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에서부터 잡아 이야기를 재치 있게 전개한다. 카프카의 <변신>이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자기 존재에 대한 고찰이 무겁게 담아져 있다면 이 작품은 훨씬 재치 있고 귀엽고 지금 시대의 체념과 포기 같은 정서들이 무겁지 않게 잘 들어가 있다. 인물도 두 자매로 주인공을 한 이유가 메시지와 작품의 분위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닌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권태로움과 '내일 그만둬야지' 같은 부분들이 티셔츠에 들어간 언니를 통해 깨알같이 잘 배치가 되어있었고, 티셔츠에 들어간 언니와 히키코모리인 동생,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고양이. 언니의 회사 과장 등의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었다. 두 자매가 가진 갈등은 크게 두 가지 프레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언니가 티셔츠에 들어가 버렸고 특별히 나오거나 그럴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이 작품만의 개성이 돋보인다. 언니는 특별한 걱정도 없고, 오히려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마음에 들어 했으며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티셔츠 안에 있는 하얀 세계를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히키코모리인 동생이 집 밖에 나가게 만든, 그것도 언니가 갇힌 티셔츠를 입고 나가게 되는 부분이다. 고양이의 사료를 사러 가야 하는 집 밖을 나가야 하는 갈등과 당위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과 갈등들, 언니와 동생의 생활적 교집합들이 적절하게 잘 펼쳐져서 이야기적인 흥미를 더 끌어올린다.언니가 동생에서 '날 입어'라고 하는 대사와 둘에게 펼쳐지는 외출에서는 둘의 캐릭터와 상황들, 관계성을 잘 보여준다. 단편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와 인물의 구조를 짜고 캐릭터 간의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부분들에서 점에서 배울 점들이 많았다.   아마 이런 설정이 아니었다면 자매 둘의 관계나 동생이 집 밖으로 향하게 되는 모습들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지점에서 작품의 좋은 점을 다시 되새기고 내 작품에 적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엔딩에서는 언니가 동생에게 한 말들과 행동들이 이 작품이 은은하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잘 느껴지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오도독!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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