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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 2022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 2022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이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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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이름은 반다 : 2022 현진건신인문학상 수상작 서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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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침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여하정
  • 단편 당선작
    보델레 함몰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보델레 함몰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이한얼
  • 단편 당선작
    초대 : 2022-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초대 : 2022-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이밤
  • 단편 당선작
    하란, Joo : 2022-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하란, Joo : 2022-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구현정
  • 단편 당선작
    그레이하운드 : 2022-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위시리스트 담기 자세히보기
    그레이하운드 : 2022-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정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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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편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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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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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호저클럽을 읽고 제목이 참 특이했습니다. 호저가 뭐였는지 잘 기억이 안나 검색을 해보니, 아 고슴도치 같은 동물이었구나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왜 호저클럽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끝까지 다 읽었을 때 비로소 이해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어떤 인물이 누가 누구였고,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정립해보려고 스크롤을 몇 번 올렸습니다. 제 성격상 글을 읽다 인물이 4명이 나오면, 머리 속에 방 4칸을 만들어두어야 하거든요ㅎㅎ. 각각의 칸에 그들이 했던 대화와 성격을 차곡차곡 쌓아보려고 했는데,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글을 읽을수록 방을 나누었던 칸막이들이 흐릿해져 갔습니다. 누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나누어보다가, 나중에는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누구에게 가까웠을까 이리 저리 대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제이였고, 어떤 때는 내가 엘에 가까웠습니다. 그게 참 재밌었습니다.  예전엔 눈치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ㅡ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남들이 불편하게 느끼면 어떨까. 내 말이 상대방을 찌르면 어떡할까 해서 ㅡ 카톡하기 전에 글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합니다. 썸 탔던 연애 초기마냥.. ㅎㅎㅎ 그래서 해야 할 말을 되삼킨 적도 많아집니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내 의견을 낼 수 있는 그 아슬아슬한 최적의 밸런스를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 이 짧은 리뷰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네요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몰라서 ㅎㅎ​ 마음안자리
미안하다, 사랑한다~ <여분의 사랑>이 글의 제목을 보고 여분 만큼 남았다는 게 맞을텐데. 뭔가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내가 미처 거기까지는 못 간걸까~그래도 할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을.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헤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희 처럼 많은 이별 앞의 연인들은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나도 그랬던 것 같다.최대한 쿨하게~최대한 아무렇지 않게~그러고 싶은데 그렇게가 되지 않아..아프고 아프게 했던 ... 아니면...그냥 연기처럼 지워지기를 바랐던...서투른 이별 때문인지, 사랑의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이 둘이 같은 건지...사랑에는 별로 소질없는 나로서는 분간이 안 간다.서툰 이별 때문에 잔인한 게 어설프게 질질 끄는 것 보다 낫다고 여겼던 것 같다.그런데 우주를 지켜 보고 이별하는 다희는 참으로 어른스럽다.어쩌면 우리 주위에 많을지도 모를 떠돌이 개처럼우주와 다희가 많을지도 모르겠다.어린 우주는 아직 자라지 못한 채그 방에 잠들어 있는건 아닐까.작가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끌어내는 시각과표현력을 가진 사람이 맞구나 싶은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갔지만지난 날 서툴렀던 나를,만나 왔던 많은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었다.여운이 남을 것 같습니다.지나온 많은 아이들 생각에...관해
사과와 러시안 블루... ​제목 앞에 또 멈칫 했다. 안락사라는 단어가 조금 망설여졌지만,작가의 전작들을 읽었기에 손이 먼저 나간다.   <고양이 안락사>일주일을 못 넘긴다는 의사의 말에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누나와 시골로 온 주인공.그리고 마치 일부러 그렇기라도 한 듯 오해 받을 만한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기회로 삼은 사람.눈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눈치가 아주 정확한 친척.불길한 예감을 잘도 예견하는 고양이...한결 같은 어머니의 사랑이...그럼에도 눈앞에 그려질 것 같은 시골의 고즈넉 하고 평온한 풍경이...역시나...    나는 이렇게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고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나도 친 자매나 다름없는 사람을 코로나로 잃으며 잃은 아픔 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에 분노했었다.<사람과 사람 사이>를 읽을 때는 그런 슬픔을 위로 받고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면   <고양이 안락사>는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바로 쓰기가 힘들었다.나 또한 부모님의 죽음 앞에 한 마디도 못하고 보내 드려야 했던 시간이 떠오르며작가의 글은 잔인하지만, 정직하게 내 마음을 관통했다.그래도 깔끔한 문장이라...덜 아프다.적확한 표현으로 빠르고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   이번에도 차마 내 입으로 말 못할 그런 나의 치부가 주인공을 통해 드러난 것 같다.   또한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인 양 말하기 보다는이런 감정에 닿아 봤는지, 그런 절박함까지 자신을 몰아가 보고믿음으로 환하게 웃은 건지...적어도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여기게 된다.   누가 내게 조언을 했었다.끝까지 가 봐~정말 그 끝까지 생각해 봐~ 겁쟁이인 나에게 그 사람이 한 말을 <고양이 안락사>가 한 글자 한 글자 가르쳐 준다.   적어도 그 절망의 끝에서 안락함을 얻은 자, 과연 누구일까.   ​팽팽한 긴장감을 공간의 섬세한 묘사와 컬러감의 대비로 글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게 하는 작가의 필력은늘 매력이 넘친다.관해
그레이 하운드의 감동이 호저 클럽으로 정은시 작가의 <그레이하운드>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작품 <호저클럽> 역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호저클럽>을 읽고 난 소감은, 일단 재밌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인물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쇼펜하우어의 호저 딜레마를 서두에 인용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무엇보다 인물들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분위기가 퍽 인상적이었다.  나름 몇 가지 감상 포인트를 통해 이 작품을 감상해 보았다.   ▶​전작인 <그레이하운드>와 같이 감상하기!​<그레이하운드>에서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낯선 두 명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처음 만난 두 명의 인물이 밀도 높게 잘 그려졌으며, 장면 묘사가 선명해 실제 그레이하운드를 같이 탄 것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호저클럽>에서는 그레이하운드보다 시공간이 좀 더 확장된 면이 보여진다. 그러한 시공간 속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네 명의 인물, 류,킴,제이,엘의 관계가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주제로 선택한 호저 딜레마가 소설적으로 잘 구현된 것 같다.  <그레이하운드>에서 느꼈던 강렬한 장면 묘사가, <호저클럽>에서는 네 명의 내면에 대한 강렬한 묘사로 이어진다. 소재를 선택하는 감각, 주제로 구현하는 방식, 플롯을 치밀하게 짜는 공력, 그 뿐만 아니라 인물과 그들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집중도 면에서 놀라운 작품이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주는 매력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킴, 류, 제이, 엘. <호저클럽>에서는 네 명의 인물에 대한 관계성을 보여 준다. 그런데 호저 딜레마라는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한다.  이 소설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한 점이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그로 인해 네 명의 관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없이 묘사되어진다. 독자는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그들의 표정을 살피게 되며, 그들의 행동과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그들 중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소설을 따라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 단편 안에서 네 명의 관계성을 다룬다는 것이 쉽진 않을텐데, 그런 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 꽤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호저 딜레마를 소설 초반에 인용 ​소설 첫 부분에 쇼펜하우어의 호저 딜레마를 인용한 점이 좋았다. 그로 인해 소설 전체가 그 주제로 장악되어 집중도가 높아졌다. 주제를 잘 구현하기 위해선, 때론 이처럼 과감하게 치고 나갈 필요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 긴장감과 재미는 덤으로^^비탈
이제 나도 떠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 문장을 보자 마자 또 혼자 숨 죽이고 웃었다.어떻게 이렇게 허를 찌를 수 있을까?아무도 하지 못한 말,아무도 하고 싶지 않지만 궁금했을 그 말. 작가의 다른 글에서 처럼 인간의 욕망을 그저 담담하게진실하게 직시하며 따라가다 보면 정말 무언가 있다. 나도 작년 여름 가장 친한 언니를 코로나로 잃었다.그 때 이 글을 봤다면 어땠을까?나는 그 죽음 앞에 여러가지 이유로 분노하고 있었는데..이 글을 봤다면 분명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사실 그런 큰 슬픔 앞에서 너무 진지한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고역일 때가 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고안해 낸 슬프지 않은 저장장치라는 말이,정말 공감이 된다.대체 작가는 이런 장치를 얼마나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까?아니면 갖고 있을까? 코로나를 통해 맛본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 시스템.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던 그 현실을 작품을 통해 다시 보며이렇게 사실적이면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작가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떻게 변했을까?어떤 이는 더 돈 버는 일에 매진을 하고,어떤 이는 더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고어떤 이는 여기 저기 기웃 거리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고어떤 이는 더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것이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원래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다.달라진 것은 단지 통제된 사회와 개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외형이 아니었을까? 전자 팔찌를 채우는 발상. 개인의 삶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글이었다.지난 코로나 기간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글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나는 이런 상황이 또 온다면 그때는 무엇을 할까? 혼자 중얼거리다 자정이 훨씬 넘어 잤다.꿈 속에서 대답했다"나도 글을 쓸래" 코로나 동안에도 나는 먹었고, 잤고, 돌아다니고 할 것은 다 했다.어쩌면 더 활발히 사람들이 없는 틈을 비집고 다 했는데...남긴게 없다.이젠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겁하지 않게 살고 싶다,고요한 작가의 글은 그런 것 같다.그냥 작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그런 사람이 비겁해 지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방법을알게 하는 힘이 있다.  나도 그녀를 내 마음에서 온전히 떠나 보내기 위해 슬프지 않은 저장장치​를고안해 봐야 겠다.  관해
사랑에 관한 독특한 해석 김솔 작가의 소설적 세계관을 좋아하는 독자이다. 스코에 올라온 <말하지 않는 책>이 언어에 관한 낯선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걷는 여자, 걷는 남자>는 사랑에 관한 낯선 세계관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어떤 경로를 거치며, 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흔히 사랑은 인연 혹은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또한 사랑의 호르몬으로 기인한 것이라는 과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 최근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고 한다. 30년 넘게 유지해 온 과학계의 정설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영원히 이해될 수 없는, 영원한 미제로 남을 것인가.  김솔 작가의 <걷는 여자, 걷는 남자>는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해석한다.  그것은 주류를 이루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계관 속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존재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단어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걷다'일 것이다.  걸었다, 걷는다, 걸을 것이다가 아닌,  '걷다'! 이 소설이 보다 재미있었던 까닭은, '걷다'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까운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에 대해 보여주는데, 정말 많은 공감이 갔다. 또한, 작품을 통해 인류 보편적으로 내재된 선험적인 경험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사랑을 '걷다'로 접근하다니! 김솔 작가의 작품은 작가 고유의 언어를 통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세계에 접근하는 것 같다. 작가가 어떻게 언어를 다루느냐에 따라 한 단어로 하나의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김솔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에 급속도로 빠져들어 새로운 세상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걷다!  너무 앞서지도, 그렇다고 너무 뒤쳐지지도 않는, 동일한 보폭으로 걷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연인 걸까.  sunny
흐느낄 수밖에 없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감탄을 연발하다 금세 달고 깊은 잠에 빠지는, 그런 소설이 아니다.감탄보다는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어 책을 덮고도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런 소설이다. 깜박 졸다 눈가에 물기가 만져진다면, “나 이전에도 여기 있었고” 나 이후에도 있을 몽구스가 사라진 뒤 소리 죽여 흐느낀 주인공처럼, 꿈에서 그렇게 흐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내버려두면 혼자 죽기 딱 좋은 황량한 땅으로 전출된 “나”는 목소리로부터 타조를 사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리고 어느 날 피떡이 된 기오가 자루에 넣어져 내 앞에 던져진다. 그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대를 받아 왔다.고향에서 타조와 어울려 살았던 기오는 타조를 유인하고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 비결을 묻는 내게 그는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된다고 한다.  목소리는 내게 타조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 아직도 타조에게 이름을 지어주는지 묻는다. 그러곤 복종을 모르는 타조를 어떻게 때려죽였는지 내게 들려준다. 타조의 운명을 걱정하는 내게 기오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나 걱정하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군인들이 들이닥쳤을 때 타조들은 기오를 믿고 울타리를 순순히 나오고, 결국 군인들에게 끌려간다. 주영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타조 이야기를 꿈꾸었고 깨어났을 때 흐느꼈다고 한다. 복종하지 않는 타조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피범벅이 되도록 때려죽이는 장면에서 독자인 나도 흐느꼈다. 작가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음이 틀림없다. 타조는 우리와 상관없는 먼 존재가 아니다.  소설에서, 타조는 주인공이고 기오이고 아버지인 동시에아무 것도 모르고 전쟁에서 설쳐댄 “철딱서니” 군인들이다. 언젠가 “목소리”도 타조가 될지 모를 일이다. 현실에서, 타조는 나이고 너이고 우리 모두이다. 히틀러와 푸틴이 일으킨 전쟁과 그들의 군인과 무고한 시민과 난민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지뢰밭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지뢰밭 너머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가 권력을 가진 자라면 그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주저 없이 지뢰밭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이미 지뢰밭을 뛰다 피투성이가 되어있을지 모른다. “목소리”는 권력을 가진 자의 다양한 변주이다. 소설에서처럼 전시 사령관일 수도 있고 국가 지도자, 회사 오너, 직장 상사, 부모, 교사, 그리고 급우를 ‘기생수’라고 놀리고 '빵 셔틀'을 시키는 부잣집 짝꿍일 수도 있다. 범세계적으로 나간다면, 기오를 학대하는 무리처럼 철저하게 우생학을 믿는 종족일 수도. 혹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너와 내가 “목소리”가 될지도 모른다.  양육강식 논리에 좌우되는 폭력적인 사회에서 “목소리”와 “타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어제의 목소리가 오늘의 타조가 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깨어있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을 몇 개월 만에 다시 읽었는데도 거대한 울림통이 그대로였다. “타조” 때문에 너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리뷰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ams
'돌려차기'의 미학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가 무수한 작가들이 물고 빨고 짓씹다 버린 찌꺼기라면, 찌꺼기의 왕중왕은 단연코 가족사일 것이다. 그래서 맨날 깨진다. 가족 이야기 하지 마세요.깨지면서 중얼거린다. 가족 이야기를 안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절망스럽다. 소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는 절망하지 말라고 말한다.이렇게 풀어내면 된다고. 풀어내는 방식을 연구하라고. 소설은 도입부부터 뭔가 독특한 표현 방식을 취한다. 한 눈에 혹하는 되바라지고 톡톡 튀는 문체가 아닌데 젊고 신선하고, 동시에 클래식하고 우아하다. 작가는 ‘나’의 삶을 ‘기후’에 비유하며 안젤라와의 관계성을 기상학적 언어로 묘사한다. 이것은 ‘내’가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데 기여한다. 마치 일기예보처럼, 안젤라에 대한 ‘나’의 마음이 덤덤하고 객관적으로 서술된다. 하지만 그 일곱 줄의 문장에서 독자는 ‘나’의 비루한 삶과 지겨운 가족사와 안젤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알아차린다. 구구절절 토해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쌍한 미혼모 안젤라는 ‘불쌍한 사람을 만나서 정말로 좋다’고 ‘나’에게 말한다.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안젤라가 귀엽다.’는 나.하지만 안젤라는 ‘나’의 장애인 동생 병우와 무언가를 비밀스레 도모한다.언뜻 통속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방식으로 통속을 거부하고 낯설어진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독자에 아랑곳없이 시종일관 얄밉게 감정을 절제하고 거리두기를 한다.병우가 ‘멀쩡하게 일어서 하늘을 향한’ 자신의 거시기를 보고 ‘통쾌해’하며 '미친 듯이 웃는' 장면은 독자의 예상을 통쾌하게 비웃으며 소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것은 삶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면서 삶의 무게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조금은 감상에 젖게 된다. 병우의 바람대로 다음 생에는 그가 다르게 살기를.안젤라가 이제는 진정 가볍게 살기를.카페 함부르크로 다가오는 ‘나’의 아침이 매일매일 따스하기를. 한 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모두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건,한 해의 끝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ams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문제를 지닌 인물이 일련의 사건을 겪음으로써 삶의 방향을 수정하는 이야기는 특정 작품을 대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으로 많이 읽혀왔고 보여져왔다고 생각한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의 이야기의 골격은 그런 면에서 새로움은 없었다. 그러나 화자를 통해 거리감을 확보하면서 삶의 무게에 도달하는 궤적이 섬세하고 기발하다고 느껴졌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는 거칠게 요약하면, 삶의 무게가 무거운 나와 안젤라의 이야기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몸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처지로, 어깨에 짊어져 있는 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간다.안젤라는 대학교 사진 동아리 동문으로, 십 년 만의 재회에서 미혼모가 되었으며 아기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된다.안젤라는 나와 가까워지면서 나의 동생 병우의 수발을 돕는데 그로 인해 둘은 미묘한 관계로 발전한다. 병우는 자신의 석화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동영상으로 남길 뿐 아니라 여러 곳에 보내 상금을 받을 정도로 도전적인 인물이다. 안젤라는 병우와의 만남 이후 자신의 아버지처럼 살 순 없다며 병원 수속도 밟지 않은 채 홀연히 떠난다. 그녀는 가볍게 살겠다고 말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익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볍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거움을 덜어내는 것일까? 무게를 자각하는 것일까? 어느정도는 조금씩 다 들어맞는다. 오늘 해야할 일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덜어내거나, 남의 뒷정리나 하면서 보내고 있는 삶의 무게를 자각하거나. 다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삶에서 무게는 무엇인가. 그게 무게가 있는 것이던가?빛은 물질이 아닌 요동이기에 멀리갈 수 있다. 함부르크를 통해 오는 아침과 안젤라가 가볍게 살겠다고 했던 선언에 중첩된 의미에는,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통과하며 각자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짐의 무게에서 분리된 삶의 무게를 되찾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새로워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병우의 귀를 만지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작가의 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2022 현진건문학상 수상작을 스토리코스모스에서 열람할 수 있게 되어 너무 편안하게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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