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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안을 가진 소녀

소설 단편

차상훈 2026-06-07

ISBN 979-11-94803-88-1(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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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픽 포인트

‘창작자는 성공과 자기복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소설. 표면적으로는 인기 시리즈 작가의 창작 위기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창작자와 캐릭터의 관계, IP 산업과 자본의 충돌, 창조와 자기복제, 성공한 캐릭터의 유령성, 작가가 자기 작품에 잠식되는 과정을 다룬 대단히 메타적이고 동시대적인 작품. 단순한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성공한 캐릭터가 창작자를 식민화하는 현상을 거의 공포물처럼 묘사한다는 점이 대단히 현대적이다.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으로 갈아타는 통로를 걷다 보면, 가상의 캐릭터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팬들의 광고가 많이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오타쿠들이나 할 법한 행동이라 여겨졌고, 철없고 사회성 부족한 사람들의 바보짓이라고 보는 시선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덕심(?)의 역사는 꽤 길다.

100년도 더 전, 모두가 아는 불세출의 탐정 ‘셜록 홈즈’가 대표적일 것이다. 창조자인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계속 쓰는 일에 염증을 느꼈고, 끝내 그를 죽이는 이야기를 썼다. 팬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영국의 왕족은 항의 편지를 썼으며, 그의 모친조차 왜 홈즈를 죽였는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결국 아서 코난 도일은 홈즈를 다시 쓰긴 했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받았다고 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게임, 드라마, 영화 등에서 창조된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고 심지어 집착하는 소비자들은 많다.

이 소설은 창작자가 가질 법한 고민에 대해 쓴 글이다. 동시에 독자와 소비자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세라는 굵직한 양장본 시리즈로 6권까지 출간되었고, 게임으로 만들어졌으며 최근에는 OTT 드라마 제작도 앞두고 있었다. 대중은 세라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결말이 좋을까? 그녀의 오랜 소원이었던 파리 여행을 보내 주면 될까? 아니면 적당한 상대를 만나 결혼이라도 시켜야 할까? 행복한 결말이라면 사람들은 홍세라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정리하고, 나에게서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해 줄까?

…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들은 분명 또 다른 ‘세라’를 원할 것이다. 창작물에 공식적인 결말이 존재하더라도, 소비자와 회사는 프리퀄, 리메이크, 재해석 같은 이름을 붙여 가며 박수칠 때 보내주지 않는다. 결국 세라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나는 붙잡힐 것이다.

홍세라는 죽어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자. 나는 휘둘리려고 작가가 된 게 아니다. 펜을 휘두르기 위해 작가가 된 것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갔다. 부팅이 끝나자 바로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도심의 골목. 남자가 세라의 팔을 붙잡았다. 뒷걸음질 치려는 그녀의 몸이 단단한 힘에 얽혀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칼끝이 배를 찌르고 파고들었다. 하늘색 셔츠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세라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남자의 힘은 너무 강했다. 벽에 밀착되는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느꼈다. 남자는 칼을 뽑아 다시 찔렀다. 세라는 고통 속에서 남자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남자가 움찔하는 틈을 타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 그를 밀쳐냈다.

거리로 뛰쳐나온 세라는 가로수에 몸을 기대었다. 골목을 돌아봤지만,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숨이 가빴다. 셔츠가 피부에 달라붙고, 피가 점점 차갑게 식어 가며 번졌다. 도와 달라고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스팔트를 적시는 피를 보고 나서야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라는 문득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자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담배 한 모금의 쓴맛이었다.

어둠이 그녀를 삼켜 갔다.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2026-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보석안을 가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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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녀의 이름은 세라가 아니다 박은비 2026-06-07
1 홍세라 죽이기 이상헌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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