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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마트료시카

소설 단편

명희진 2026-03-15

ISBN 979-11-94803-77-5(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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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포착한 동시대적 서사.
해외 이주라는 환상과 현실의 파탄을 병치하며, 개인적 선택과 사회적 불안이 어떻게 삶을 잠식하는지 예리하게 드러낸다.
마트료시카 인형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후회가 층층이 중첩되는 심리 구조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소설.

폴란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이 힘들면 타트라산맥으로 가라.”

사람들은 그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인생이 힘들면 자코파네에 가라.”

자코파네는 타트라산맥 아래 자리한 도시이고, 그 산속에는 ‘바다의 눈’이라 불리는 모스키에 오코가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주변의 산들까지 또렷하게 되비치는 호수를 보고 있으면, 외눈박이 괴물이 떠오른다. 폴란드어로 오코(Oko)는 ‘눈’이라는 단수 명사이기 때문이다.

지유와 지훈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길을 떠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일에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결코 포기하면 안 됐지만 결국 포기한 것들’이 모스키에 오코에 되비치며 수면 위로 드러난다. 「마지막 마트료시카」는 그 균열에서 시작됐다.

“마트료시카 인형입니다. 핸드메이드입니다.”

커플은 자신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돌아갈 경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지훈은 유창한 영어로 최근에 우크라이나는 어떤지 물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지유는 그런 걸 묻는 지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가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번역기를 틀어놓은 듯 기계적인 억양의 한국어를 했다. 지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지유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유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탁자 위에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얼마에요?”

지훈이 퉁명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만 원입니다.”

사내는 숙인 허리를 더 깊이 숙이며 값을 말했다.

“좀 비싼 거 아니에요?”

지훈이 흥정을 시도하듯 되물었다. 그때 지유와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핸드메이드입니다.”

여자가 인형 하나를 들어 보였다. 지유는 여자의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었다. 인형 하나를 팔면서 보이는 기대라기엔 터무니없이 크고 무거워 보였다.

“마음에 들어. 사자.”

지유는 나란히 진열된 인형 중 하나를 손에 쥐며 지훈을 바라봤다. 그가 미적거리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사내에게 건넸다. 돈을 받은 사내와 여자가 허리를 반으로 꺾어 여러 번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얼결에 지훈과 지유도 그들을 좇아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지유가 어색하게 말했다. 지유와 지훈은 사내와 여자가 탁자에 펼쳤던 물건을 주섬주섬 챙겨 다른 테이블로 가는 걸 눈으로 좇았다. 그들은 옆 테이블에서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했다. 옆 테이블에 커플은 은반지를 하나 샀다. 그들은 다시 허리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곤 다시 옆 테이블로 옮겨갔다.

“사기꾼들 같아.”

“설마……”

“러시아 사람들일지도 몰라.”

지훈이 마지막 마트료시카 인형을 들었다가 거칠게 내려놨다. 그 바람에 인형이 탁자 밑으로 떨어졌다.

2012년 민중문학상 신인상 당선

2025-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ssaki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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