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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2025 현진건문학상

현진건문학상 단편 수상작

강정아 2025-11-04

ISBN 979-11-94803-42-3(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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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짬뽕」은 사랑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그 자체로 당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사랑은 타인을 배제하고 소유하고 파괴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 이성 사이의 사랑, 형제나 친구의 사랑도 그렇다. 타인을 포용하고 보호하고 자유롭게 하는 사랑은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성찰과 노력을 통해 비로소 성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엄마 외의 가족이 없는 나는 엄마가 죽고 나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떠난 여행에서 중석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관계가 파탄 난 후 중석이 다른 사람을 격렬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중석은 나와 재회한 자리에서 사망한다. 사랑의 상처를 안고 우울한 세상에서 떠밀리면서 살았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낯선 곳에서 살아갈 용기를 익숙한 짬뽕 맛에서 찾는다.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외톨이 고아였다. 외로웠다. 엄마가 없으면 혼자인 삶을 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길을 걷다가 광고 전단을 보고 여행사에 찾아가 일 년짜리 세계 일주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익숙한 것들이 없는 곳, 애초부터 낯설어서 나를 서럽게 만들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돈이 충분했다. 세 번째 적금과 퇴직금을 합한 것보다 엄마의 사망보험금이 훨씬 많았다. 적금만으로는 삼십 년이 걸려도 모으기 힘든 금액이었다. 집을 살 필요도 없었다.

스리랑카에서 중석을 만났다. 중석은 즉흥적으로 팀을 꾸려 다니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해산하는 방식의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머물고 싶은 곳이 생기면 돈을 벌면서 머물다가 마음 맞는 팀이 만들어지면 다시 움직였다.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연예인보다 유명했다. 이 년째 여행 중이던 중석과 반 너머 일정을 남겨 놓고 있었던 나는 스리랑카에서 여행을 멈추고 함께 귀국했다. 중석의 일가친척이 살았던 빈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삼동으로 갔다. 나는 중석을 엄마가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삼동의 집은 대청마루와 흙 마당이 있는 옛날식 주택이었다. 그 집에 도착한 첫날, 중석이 미리 주문해 놓은 침대를 조립하는 동안 나는 마루를 닦았다. 각자 가지고 온 짐 가방과 중석이 본가에서 실어 온 짐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조립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중석은 쉣, 쉣 영어식 욕을 내뱉었다.

결국 침대를 완성한 중석은 몹시 다급한 얼굴로 씻자,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일러가 문제였다. 난방은 되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서비스센터와 몇 번이나 통화를 하고 보일러실을 들락거리던 중석이 에잇, 하며 휴대폰을 던져버리더니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갔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물소리가 끊어지다 이어지다 했다. 중석은 덜덜 떨며 욕실에서 튀어나왔다. 입술이 퍼렇게 질려 있었다. 물기를 채 다 닦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셔츠를 입으면서 중석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자기는 무리야.

중석은 풀지 않은 짐 속에서 냄비와 전기포트를 찾아냈다. 제일 큰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전기포트에도 물을 담아 끓이기 시작했다.

설마 나 씻으라고 물 데우는 거야, 지금?

중석은 대야에 물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짐 정리를 마저 하고 씻겠다는 내 말에 중석은 안 돼, 지금 당장 씻어야 돼, 라고 말했다.

침대가 제대로 된 건지 테스트해 봐야지.

중석이 내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전기포트의 물이 끓어 딸각 소리를 내며 스위치가 내려갈 때까지 중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날이 제일 행복했던 날이었다.

2024년 장편소설 『책방, 나라사랑 』 출간

202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2025 현진건문학상 수상

 

jakang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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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살소름 돋은 뒤에 먹는 짬뽕맛! 얼그레이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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