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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의 미래: 2025 현진건신인문학상

현진건문학상 단편 당선작

김소형 2025-11-04

ISBN 979-11-94803-44-7(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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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작

바닥광고에 발을 흠뻑 적셔보고 싶은 날이 있었다. 흰 운동화가 바닥광고 위에 놓이자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었다. 바닥광고 위를 서성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경계 밖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온몸에 빛이 쏟아지며 내 몸이 광고지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또 다른 내가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고 빛의 옷을 입고 소설 속 인물의 욕망을, 바람을, 의지를 투영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내가 갈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여행한다.

“이래의 미래”에서 이래는 누군가의 터전이었고 삶 자체인 공간이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시간 속에 영원히 존재하기에 그곳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미래이기도 하다. 그 미래의 공간에 바닥광고와 같은 색을 입혀주고 싶었다. 공간의 기억을 철거할지언정 삶은 철거될 수 없는 미래의 연속이라고. 그 미래의 조각에 색 하나를 놓아주는 글. 그곳에 한 발을 내딛고 유유히 나아가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바로 지금 여기. 여기를 떠나 다시 여기에 도착한다. 이곳은 이래의 미래다.

철들 무렵 집을 뛰쳐나왔다. 이후 단 한 번도 집 근처에 가지 않았고 고기도 먹을 수 없었다. 고기를 한 점이라도 먹은 날엔 뱃속을 거의 비워낼 때까지 화장실을 드나들고 머리가 울리도록 토하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고기는 내가 이 세상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내가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아빠가 사고로 죽고 난 후에야 아빠가 없는 집으로 가볼 용기를 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간 곳은 집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단 하루도 머무를 수 없었다.

그 집을 철거하며 기진을 처음 만났다. 그녀가 고기를 보관하던 냉장고 옆 창고 벽을 부수던 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범벅이 된 채 울었다. 기진이 물었다.

“집이 사라지니까 슬퍼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기진은 마지막 남은 벽을 모두 부쉈다.

순식간에 두껍고 단단한 벽을 허무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25년 현진건 신인문학상 당선 

 

sohyung.kim.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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