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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적인 물고기: 2025 추천작

현진건문학상 단편

박혜원 2025-11-04

ISBN 979-11-94803-48-5(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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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현진건문학상 추천작

「학구적인 물고기」는 어느 날 느닷없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돌봄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게 된 김여사의 이야기다. 그녀는 화려했던 이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 앞에서 절망하지만, 그래도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야 한다. 김여사를 돌보기 위해 찾아든 요양보호사 이서라는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엄격하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 불만과 한이 많은 그녀는 유복했던 과거와, 특히 어머니에 대해 허상을 갖고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훼손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이서라의 왜곡되고 병적인 아상(我相)은, 동고동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김여사의 기본적 존엄성마저 무너뜨리고 만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돌봄’의 문제는 이미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돌보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관계에서 생기는 역학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인권에 손상을 입지 않아야 함은, 이 시대의 화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김여사일 수 있으며 이서라가 될 수도 있다. 그들 모두 나의 분신이다. 나는 김여사가 우아하게 황혼의 미학을 구현시켜 나가길 바랐다. 그리고 이서라 역시 경제적 권력 구조 속에서 일그러지지 않고 따뜻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이뤄가길 바랐다. 질시와 반목이 팽만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 혐오로 가득한 비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기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아름다운 그림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풀려나갔다.

등장인물과 내가, 가끔은 사이좋게 함께 길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접점을 찾지 못해 갈등하거나 때로는 각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나는 항상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지만 막상 붓의 끝은 그 방향을 잃고 의도와는 다른 곳으로 향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언제쯤에나 나는 등장인물과 화해해서 서로가 원하는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여전히 자신이 없다.

이서라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김여사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철판을 긁듯이 예리하고 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나는,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지요. 이렇게……”

그렇게 말하는 이서라의 입술이 심하게 일그러졌으며 표정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어두웠다. 눈빛만이 형형해 김여사의 얼굴을 관통할 것 같았다.

“엄마, 이제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떠나세요. 이젠 가셔야겠어요. 이렇게 사느니 가시는 게 나아요.”

대사를 읊조리듯 한 자 한 자 비장한 결의를 담아 또박또박 말하는 이서라는 연극 무대에 선 배우와도 같았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분이었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 그녀의 표정은 곧바로 확신에 찬 듯 득의만만하게 변했다.

“그럼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우아하고 당당하신 분인데…… 그래서 나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 드렸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말마처럼 외쳤다.

“그럼요!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 엄마의 그 표정은! 그 표정은……”

1999년 《세기문학》 여름호 신인문학상 당선

저서:  소설집 『비상하는 방』, 『그래도 우리는』

       수필집 『그 길 위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다』, 

       공저 『창밖의 여자, 창안의 여자』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 

 

ewhahw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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