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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하고 복슬복슬한: 2025-3 스토리코스코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조연 2025-09-21

ISBN 979-11-94803-27-0(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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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을 쓰면 무언가를 유심히 보게 되는데, 그 시선은 결국 나를 향하게 됩니다. 평범하게 매일 회사 다녔는데, 쓰다 보니 회사의 일이 아주 멀고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회사원들은 그래서, 결과에서 찾지 못한 보람을 과정에서 찾으려 애를 쓰나 봅니다.

나에게, 그리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솜털 같은 위안을 주고 싶어 썼던 소설입니다. 사실 꽤 오래전에 썼던 소설입니다. 쓰면서 한 인물에게 느꼈던 측은함이, 최근에는 다른 인물에게 넘어가는 걸 보고 새삼 시간을 느꼈습니다.

때마다 토끼 앞니로 갉아내듯 고쳐오던 소설을 잊지 않도록, 잃지 않도록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과 읽어주실 독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한은 시간이 궁금했다. 지금은 몇 시인지, 몇 시간이나 쪼그려 있었던 것인지, 이 말도 안 되는 기다림은 몇 시간이나 남았는지. 자정이 넘어 크리스마스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왜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이 아니고 크리스마스이브였을까 하는 원망도 생겼다. 1박에 40만 원짜리 특급 호텔에 혼자 있을지도 모를 여자 친구를 떠올리니 가슴이 저릿했다.

독일의 컨설팅업체에서 전화가 온 것은 아침 열 시였다. 그들의 시간으로는 새벽 세 시였고, 독일인이 새벽까지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시한은 저절로 긴장했다. 남자의 발음은 거칠고 성급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데 시간이 걸렸다.

-피프띠파이브 퍼르쎈뜨!

상대는 급박한 독일식 영어로 오늘 밤 ‘토끼’가 나타날 확률이 55퍼센트라고 소리를 질렀다. 절반이 넘는 확률. 시한은 지구 반대편 남자의 흥분에 전염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책상 두 칸 너머의 자리로 뛰어가 오거스 부장에게 보고하자 은색 안경 뒤의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평소의 점잖던 목소리도 한 옥타브 올라갔다. 그들의 들뜬 열기가 사무실 전체로 번졌다. 레오 대리가 장비와 소모품을 챙기고 테드 과장은 보고서 작성을, 오거스 부장은 인사팀장 결재와 유관부서 합의를 위해 비상계단을 뛰어다녔다. 시한도 독일에서 보내온 데이터를 검증하느라 식사는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흥분과 기대는 하루 종일 연료처럼 그들을 달궈주었다.

그렇게 낮이 끝나고 밤이 시작되었다. 어둡고 고요한 사무실에서는 몇 시간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들떠있던 마음은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시한은 기껏 55퍼센트에 하루 종일 품었던 기대가 부끄러웠다. 피로와 허기가 몰려오니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한은 지금이 몇 시인지 정말 궁금했다.

2025-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포근하고 복슬복슬한: 2025-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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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이 기다리는 토끼에 대하여 이시경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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