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늘 곁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백안시, 등한시, 투명인간 취급의 또다른 표현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그런 존재를 곁에 두고 있다. 늘 곁에 있어서, 늘 곁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을 만나고 결국 그것이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마망’이라는 발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절박한 울림을 여러 번 되뇌어보았다. 그 울림이 머나먼 인류의 시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윗대로부터 아랫대로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마망들의 거대한 공허와 슬픔의 에너지 자장을 형성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든 여성의 이야기로 읽히길 빈다.
남편과 첫째의 대화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물우물 피자를 먹던 둘째가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주말 내내 배달 음식 먹으니, 질려. 집밥 먹고 싶어. 엄마가 해 주던 된장찌개랑 계란말이 생각나네.
갑자기 둘째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
집밥? 해 먹으면 되잖아.
남편이 둘째의 말을 냉큼 받아 챘다. 누구랄 것도 없이, 남편과 둘째가 동시에 첫째 쪽을 쳐다봤다.
집밥? 그걸 누가 해?
첫째가 남편과 둘째를 보며 물었다.
침묵.
아빠는 니네 먹여 살리려면 밖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첫째 니가 동생 좀 신경 써 주면 안 되겠니?
아빠, 나도 시간 없어. 알바 하는 데까지 9호선 급행 타고 다니면 내가 매일 꼭 짐짝이 된 거 같아.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도 좀 쉬고 싶어. 내가 왜 얘까지 신경 써야 해? 빨래랑 방청소도 내가 대신 해주잖아. 이제 대학생이 됐으면 지가 좀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해. 반찬 배달해 주는 데 많아. 그게 싫으면 지가 밥해 먹음 되지.
첫째가 억울한 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도 참. 얘가…… 밥을 어떻게 하니?
왜? 걔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아이씨. 집밥 먹고 싶댔지, 누가 밥해 달래? 누나가 해 준 건 안 먹어!
됐다, 됐어. 그만들 좀 싸워! 밥은, 각자 알아서들 해결해.
남편이 언성을 높이자 둘째가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첫째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탁 위에는 그들이 먹다 남긴 피자와 스파게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휴, 남편이 식탁 위에 올려둔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한층 이마에 주름이 깊어진 남편을 자영은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2024 종이책『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002』(공저) 출간
웹북 『데스밸리 판타지』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 『푸에고 로사』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데니의 얼음동굴』 『나는 이것을 색(色)이라 부를 수 없다』『사평(沙平)』『마망』『내 소설의 비밀병기: 활자카메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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