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푸에고 로사
작가의 말
“빨간 장미라고 다 같은 빨간 장미냐?”
오래전 일이다. 한 스승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독선적인 어법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그런 내게 그녀의 의중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 깨닫게 되었다.
빅마마, 레드 엘리트, 비탈, 마타도어, 푸에고……
모두 빨간 장미의 이름이다. 흔히 빨간 장미로 불리지만 알고 보면 각각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 특성도 달라 꽃잎의 빛깔, 줄기의 굵기, 가시의 정도, 심지어 향기와 수명도 다르다.
그 중 푸에고는 단연 고급 품종이다.
우리가 아는 백송이 장미의 주인공인데, 클래식한 기품으로 인해 중세 시대에는 ‘왕족의 꽃’으로 불렸다. 덧붙여, 원래 푸에고는 스페인어로 불 혹은 열정을 의미하며, 과테말라의 활화산 이름이기도 하다.
불현듯 그녀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아마 이 소설은 그녀로부터 발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 그녀는 내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한 궁금증은 ‘이름’으로 이어졌다.
한 존재에게 있어서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푸에고는 태생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즉, 원뿌리로부터 잘려야만 시중에 출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뿌리 없는 존재가 생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온전한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그 자신으로부터 발화된 뿌리를 현실에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플로랄 폼은 뿌리가 안착할 토양이 되어주며, 디자이너는 손과 발이 되어준다.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누군가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어쩌면 자신으로부터 발화될 뿌리의 역할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현실의 삶 속에서, 서 있을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해 서서히 시들어가는 누군가에게 이 소설이 닿기를 소망해 본다. 그 이름 하나를 현실이라는 판각 위에 선명히 새겨 본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름, 푸에고 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