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는 삶의 표면이 아닌 이면과의 경계에 집중한다. 삶의 경계에서 새어 나오는 황홀(恍惚), 경(境). 박상우 소설의 치열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유정(문학평론가)
"흔히 박상우 문학의 도정을 샤갈의 마을->사탄의 마을->사람의 마을로 설명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문학은 언제나 ‘사람의 마을’ 안에서의 이야기를 다루어왔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을에서의 삶의 양상과 운명에 관한 수평적 길찾기의 이야기에 박상우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이번 선집 속의 작품들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김성수(문학평론가)
박상우 소설의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정통소설로부터 SF,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하나의 고정된 작품세계에 자신이 고착 당하는 걸 거부하고 끝없는 변신을 시도했다. 그 결과 옥탑방, 샤갈의 마을, 사탄의 마을을 거쳐 장르적인 영역으로까지 소설 세계가 확장되었다. 웹북 단행본에 수록된 7편의 단편소설은 독자가 선정한 추천작들로 박상우 소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단편적 영역에서 감상할 수 있게 배열한 소설집이다. 독자 추천작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소설이 기법과 경향에서 다 다른 특징을 지녔다는 점이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소설가가 지닌 생각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초보 소설가나 평생 소설을 쓰고 살았다고 자부하는 소설가나 다를 바 없다. 그것은 미신이나 광신적 믿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소설을 믿지 않고, 소설에 대한 나의 견해도 믿지 않는다. 고심 끝에 『박상우 소설집』에 수록할 작품을 선정하는 문제를 독자들에게 의뢰했다. 문학에 오염되지 않은 그들의 독후감을 더 신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그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웹북 단행본을 묶고 보니 이전에 내 소설에서 느끼지 못했던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박상우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신기하게도 타인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집이 만들어져 있었다. 드디어 소설가의 소멸이 이루어지고 완성되었다는 느낌, 이제 비로소 ‘나’라는 망상에서 깨어나 천의무봉한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천의무봉한 망상은 있어도 그런 소설은 없으니 웃자고 하는 말이다. 소설가로 살면서 최초로 독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집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가 동생의 여자를 처음 본 건 지난여름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 저녁 무렵에 동생과 여자가 그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여자와 첫 대면을 하는 자리였다.
해 질 무렵, 석양을 등지고 나타난 여자를 보고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배경의 노을이 역광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동생의 여자는 육감적인 실루엣으로 그를 놀라게 했다. 저렇게 늘씬하고 아름다운 미인이 어째서 장애가 있는 동생과 결혼을 하려고 작정한 것일까. 근원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첫 순간부터 그를 사로잡았다.
그가 준비한 음식과 와인으로 셋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동생의 여자에 대해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 되어 갔다. 동생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데 여자는 정도 이상으로 술을 마셨다. 많이 웃고, 많이 말하고, 많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며 그는 은근히 동생을 걱정했다. 장애를 지닌 동생이 저런 여자와 어떻게 평생을 사나.
그날 세 사람은 새벽 3시까지 함께 있었다. 적당한 시기에 자리를 파하고 싶었지만 여자가 계속 술을 마시겠다고 고집을 부린 때문이었다. 동생과 그는 도리 없이 여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결국 여자는 앉은 채 잠이 들었고, 동생과 그는 여자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여자를 눕히고 나서 동생이 그에게 말했다.
“형, 미안해. 난 이제 교회에 가야 해. 새벽 기도에 참석해야 하거든.”
“여자를 버려두고 교회로 간다고?”
“괜찮아. 그냥 자게 둬. 내가 아침에 다시 올게.”
동생은 아침 8시경에 다시 아파트로 왔다. 하지만 그때 이미 여자는 아파트를 떠나고 없었다. 동생은 그것을 당연한 일인 듯 받아들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동생이 자리를 비운 동안 그는 여자와 다시 술을 마셨다. 동생이 아파트를 떠나자마자 여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온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여자와의 대화를 통해 동생과 여자 사이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동생의 여자에게서 엄청난 말들을 전해들은 때문이었다.
여자가 동생과 결혼을 하려는 건 교회 장로인 자기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대학 때부터 사귀어 온 남자가 있었는데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구인 동생을 결혼 상대로 선택함으로써 장로인 자기 아버지의 이중인격을 폭로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신임이 두터운 동생과의 결혼을 반대할 경우, 그녀의 아버지는 더 이상 장로로서 존경을 받기 어렵게 되리라는 걸 여자는 교묘히 역이용하고 있었다.
“동생이 성불구라는 거 아시나요?”
어느 순간, 여자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 물었다. 그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불구라고 그녀는 단정적으로 잘라 말했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러고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불현듯 이렇게 물었다.
“육체는 형과 살고, 정신은 동생과 살면 안 될까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소설창작 인생창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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