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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2025-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명희진 2025-06-15

ISBN 979-11-94803-16-4(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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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를 쓴 건 아주 오래전이다.
일가족을 죽인 가장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직후였다.
그때 죽은 아이들을 살리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들을 살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2010년 이후로 줄곧 한국과 네덜란드, 두 집을 오가며 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외따로 낯선 곳에 서 있었다.
나에겐 내 글을 읽어줄 동료도, 조언을 건넬 선생도 없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 동안 나는 계속 쓰고 고치는 일에 성실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를 읽고, 주의 깊게 들여다봐 주신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어 무척 기쁘다.

“태풍이 오고 있대.”

퀭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수정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진우는 순간, 비행기에 올랐을 때와 같은 이명을 느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수정이 엄지와 검지로 그의 미간을 펴듯 살짝 눌렀다가 뗐다.

“어디서?”

수정은 웃었다. 말라 갈라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실금이 간 이가 드러났다. 진우는 수정의 손가락이 닿았던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글쎄, 남쪽에서?”

불행은 대부분 계절의 끝에 온다. 가령, 겨울의 끝자락이나 여름의 끝자락 같은, 혹은 가을의 끝자락…… 꽃망울이 터지듯, 여름 끝에 끝끝내 바스러지는 이파리처럼. 태풍이 휘몰아치듯, 불행은 계절의 끝에 서 있다. 이 계절의 끝이자, 다른 계절의 시작인 그 중간에 불행은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 암스테르담, 기억나?”

수정은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웠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수정의 옆 모습을 톺아봤다. 지난 일 년 사이 수정은 몰라보게 야위었다. 그녀의 뼈를 보고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암스테르담을 수정이 언급한 건 그 일 이후 처음이었다.

“꼭 그때 기분이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아?”

“지독히 혼란스러운 악몽을 헤매는 것 같아”

“앨리스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오더라.”

진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적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그는 언제나 먼저 잠들어 영화가 끝나고 잠에서 깨곤 했다. 그때마다 유럽 어딘가를 헤매는 꿈을 꿨다. 암스테르담의 아기자기하고 기울어진 집 사이사이를 지나다가 파리의 잿빛 공동묘지를 헤매다 깬 적도 여러 번이었다. 매번 비슷한 꿈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진우는 그 꿈속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저 나무는 이미 죽은 것 같아.”

진우의 시선이 나무로 향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그의 기억 속 나무는 싱그러운 초록이었다. 이파리가 햇살에 반짝이던 걸 그는 분명히 기억했다.

“나처럼.”

2012년 민중문학상 신인상 당선

2025년 2025-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ssaki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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