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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체어를 찾아서

소설 단편

방성식 2025-04-20

ISBN 979-11-94803-06-5(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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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삼 년 차쯤, 우연히 AV촬영 현장을 목격한 적 있다. 장소는 동네 공원이었고, 인원은 배우와 카메라맨, 감독처럼 보이는 셋이었다. 옷을 벗은 사람은 없었다. 본 게임을 하기 전, 쉽게 말하자면 영화의 오프닝을 찍는 중이었다. 배우의 외모는 평범했고 노출도 거의 없었다. 겉으로는 단정한 회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독이 지시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옷을 벗는 것도, 저속한 포즈나 대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몸에 두른 공기가 변했다고 할까. 인격이 교체됐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저 사람도 배우로구나. 연기에 사력을 다하는구나.”

AV산업은 더럽다. 마약과 폭행, 착취의 온상이며, 배우들도 정상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이면 세계인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한다. 다음 생애에도 AV를 찍겠다거나, 업계의 개선을 위해 힘쓰겠다는 등, 마치 인생을 건 것처럼 진지하게 군다. 나는 그 말을 매출을 높이기 위한 수사로만 들었다. 그래봤자 매춘일 뿐이다. 급하게 성욕을 채우는 수단일 뿐이다. 누가 그따위 일에 진심을 담겠는가?

얼마 전 그 작품을 검색해 봤다. 비주류 레이블에 후속작도 없고, 재고도 초도 물량이었다. 나는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아이돌처럼 보정된 표지, 하나는 스토리였다. 취업 준비생이 면접을 갔다가 이런저런 남자들과 하는 포르노 식의 서사였다. 밑도 끝도 없는 역겨운 내용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가 불쌍할 정도였다.

괜한 짓을 했다 싶어 창을 닫으려는데,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에 달린 리뷰였다.

<최고의 작품. 어린 시절 짝사랑이 떠올라요. 덕분에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해당 ID는 일정 주기로 댓글을 달고 있었다. 대개는 단순한 글이었지만, 가끔은 편지처럼 그날의 일을 적어두기도 했다. 나는 정말 궁금해졌다. 그는 무엇을 본 걸까? 그녀에게서 어떤 위로를 받은 걸까? 이 엉망진창, 진흙탕과 같은 메챠쿠챠한 영상에서.

이 글은 그러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플롯 없는 소설, 서사 없는 인생의 가치를 찾기 위해.

영화를 그만두자. 내게는 예술가로서의 소양이 없다.

방에 돌아왔을 때, 둘은 아직 수면 중이었다. 나는 J를 내려다봤다. 새삼 걱정됐다. 영화를 접는다고 하면 뭐라고 하려나. 나 말고는 찾는 곳도 없을 텐데, 분명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렇게 체험이 끝나려던 찰나,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의 얼굴이 변모한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인격이 다른 존재처럼.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단 이상 현상 탓만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담긴 표정, 호소력 탓이었다.

전에 없던 다층적인 감정, 왼편에는 노골적인 욕망과 천박함이. 오른쪽에는 냉소와 죽음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고결하면서도 음탕했고, 한편으로는 순진하기까지 했다. 잠든 얼굴 너머로 수많은 배우가 겹쳐 보였다. 필립 누와레와 콜린 패널, 루이 가렐, 니시지마 히데토시. 거기에 장국영까지. 동시에 J는 그들 누구와도 달랐다. 바로 대배우의 조짐이었다.

멍하니 지켜보는 사이, 패널의 벨이 울렸다. 체험 시간이 끝난 것이다. J와 그 여자 친구가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것 같았지만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고, 얼굴도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꿈꾸는 듯, 서로에게 벅차오르는 표정을 지었다.

대박이야.

J의 말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뭐가?

다 기억나. 꿈을 다 알겠다고. 정말 엄청났어.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잠깐, 잠깐만.

아니, 들어봐. 이거 정말 영화 그 자체야.

아니, 말하지 말라고.

나는 J의 입을 막았다. 놀란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래요 감독님? 뭐가 이상해요?

그의 여자 친구까지 나섰지만, 나는 답하지 못했다. 명확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직감이었다. 이야기를 옮겨서는 안 된다는, 내 안에서 꺼내야 한다는 직감.

조금만 기다려 줘…… 쓰고 싶은 게 있으니까.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장르소설집 『남친을 화분에 담는 방법』, 여행 에세이 『냉정한 여행』 출간 

웹북 『현관이 사라진 방』 『채찍들의 축제』 『이별의 미래』『만년필에 대하여』『셸터』​『러브체어를 찾아서』​ 출간

 

linktr.ee/bbangaa

qkdrntlr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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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몸으로 하는 사랑을 위하여 혜섬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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