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나는 생각보다 맛있다>와 <스쿨 미즈>에서 개성 있는 이야기를 보여줬던 차상훈 작가의 신작 <보석안을 가진 소녀>도
거침없는 이야기 진행과 여운을 남기는 엔딩, 한 번쯤 창작에 등장하는 소재를 어떻게 낯설게(개성있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등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도입부에서는 창작자를 집어삼킨(?) 창작물에 대한 여러 사례들이 스쳐지나갔는데, 우선 떠올랐던 건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였고, '작가의 말'에서도 등장한 <셜록 홈즈>였다.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 트루먼의 삶 전체를 기획하고 통제했던 감독(창작자)의 의지를 배반하고 트루먼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문 너머로 사라진다.
감독이 트루먼의 세계관 이탈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에 비해, 트루먼 쇼가 끝나고 나서 시청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다른 채널의 다른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셜록 홈즈>의 사례와는 거의 반대로 느껴지는데, <셜록 홈즈>는 오히려 창작자가 포기하려고 했던 창작물을 팬들의 광기 어린 팬심(?)으로 되살리기에 이른다.
<트루먼 쇼>가 창작자와 창작물의 내적(이라는 표현이 걸맞는지는 모르겠다) 갈등이라면, <셜록 홈즈>는 현실 세계의 창작자와 세상의 대립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이 사례들을 떠올리면서 <보석안을 가진 소녀>를 감상한다면 좀 더 풍성한 감상이 될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창작자와 창작물의 갈등보다는 창작자가 외부에서 겪는 갈등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하다고 느꼈다. 이를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와 녹여낸다는 게 창작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데, 거침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을 느꼈다. 거침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창작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창작자는 자신이 창작한 작품들을 매 순간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를 필연적으로 가지게 된다. 뛰어넘는다는 게 더 나은 작품을 짓는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존의 것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짓는다는 뜻도 있다. 새롭다는 게 참 말은 쉬운데 사실 어렵다. 창작이라는 게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되겠지만, 기존의 것을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 하는 게 될 수도 있겠고, 새로운 표현으로 낯설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창작자가 이전의 창작물(이 작품의 흐름에 따르면 '잘 나가는 작품')에 얽메이는 순간 창작의 원동력을 잃기 쉽다.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 내 창작물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창작자에게도 큰 자부심이기도 하고, 그것이 '돈'과 얽혀 있다면 창작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얽메이기 시작하는 순간 더이상 창작이 아니라 공장이 되어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창작자로서의 생명력은 거기서 판가름 날 수도 있다. 안전한 것에 머물러 자가복제 하느냐,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을 할 것이냐.
보통 이런 류의 작품들은 그런 창작자의 내적 동기를 다룬다면, <보석안을 가진 소녀>에서는 외적 동기를 다루는 듯하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이미 새로운 작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홍세라'를 죽이기로 결심했으니까. 주인공은 '홍세라'가 아닌 '소녀'를 선택했지만
외부의 압력에 의해 나아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력이 지극히 현실적이라 몰입해서 읽었다) 그 쉽지 않은 외부의 상황과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뒤섞인 상태를
'소녀'의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표현되는 것도 좋았다.
작품의 마지막에 가면 어느새 나는 한 명의 창작자로서 주인공의 결심을 응원하게 된다. 여운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작품이다.
차상훈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힘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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