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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다리는 토끼에 대하여

이시경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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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난국이다.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토끼를 잡는 일이라니. 이토록 황당한 설정이 또 있을까 싶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어리둥절해진다.

 

뭐야, 이거 진짜였어? 이런 부서가 해외에 정말 있었단 말이야?

 

이야기의 발화는 터무니없는 상상력에서 비롯되었지만, 종착지는 묘하게 현실적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토끼 잡기’라는 소재에 대한 초지일관한 초점 덕분일 것이다. 작가는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플롯을 통해, 시한이 속한 부서가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 과정은 추리 소설을 방불케 한다. 시종일관 긴장감이 이어지고, 독자는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듯 몰입한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의 의식은 쇼츠의 발달로 더 이상 깊이를 쫓지 않는다. 끝까지 보기도 전에 ‘다음 것’을 보려 손가락을 움직이는 훈련을 받은 세대. 짧은 순간의 쾌락을 놓치지 않으려 늘 스크롤을 넘기는 습관이 이미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다. 하나의 콘텐츠를 온전히 붙잡는다는 것은 이제 거의 도전처럼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소설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유튜브 영상이든, 심지어 음식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결국 끝까지 경험하게 만드는 힘이다. 대중이 끝내 읽고,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도록 몰입감을 유도해 창작자의 의도에 최대한 근접하게 하는 것. 바로 낯선 감각의 경험을 제공하는 일이야말로 필수적인 미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상상력은 하나의 미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덤불 속에서,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어느새 나는 시한처럼 한 손에 당근을 쥔 채, 크리스마스 이브가 오든 말든 내가 쫓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순간, 어라? 

 

수풀이 흔들린다. 그것은 내 의식을 앞질러 달아나고 나는 조바심을 내며 그 뒤를 따른다. 언젠가 내 손에 잡힐 거라는 확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토끼를 쫓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그 길은, 작가가 독자를 위해 미리 깔아둔 토끼몰이 경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뭐 어떤가. 

 

이미 나는 당근을 흔들며 그 길 위를 달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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