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배제했으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이기는 하나, 독자 입장에서의 소설적 기본값은 아름다운 문장과 서사적 긴장, 그에 따른 재미에 마지않을 것이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집중하고, 예기치 못한 반전에 놀라고, 여운이 남는 결말을 맞이한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는 아름다운 문장과 묘사, 사건과 장면, 이후에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 그게 활자 서사 예술의 기본이고, <북두칠성의 복사점에 관한 사적 견해들>은 그런 기본을 상기해 주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주희라는 아이가 ‘그들’이라는 존재에 의해 사고를 당한 이후를 그린다. 주희의 부모, 숙부와 숙모까지 네 명의 어른이 가평의 오래된 별장에서 ‘그들’로부터 주희를 보호하는 것이 표면적 서사라 하겠다. 어른들은 경고하듯 주희에게 주입한다. ‘그들’은 사납다고, 어떤 흔적과도 같은, 불안이 묻은 존재라고. 배후에는 할머니의 묘한 죽음이 깔려 있다.
독자로서 독서의 시작은 이랬다. 재난과 재해에 대비하는 어른들을 보며 ‘그들’이라는 환상적 요소가 섞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식 소설이겠거니. 허나 어른들 사이 부딪는 태도, 스산한 묘사, ‘소리가 나지 않는 곳이 없는’ 별장의 공간으로 빨려 들수록, 독자로서 묘한 불안에 사로잡혔다. 불안이 고조될수록, 읽고 지나친 퍼즐 조각 같은 요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숙모의 사고, 할머니의 죽음, 사고로 잃은 주희의 기억, 상속에서 제외된 어른들 등. 종국에는 머릿속에 수놓인 퍼즐 조각들이 북두칠성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다.
인물들이 일제히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독서 내내 고민하다가, 끝에 그 답을 발견하는 일은, 충격적인 비밀의 폭로를 목도하는 일은 커다란 카타르시스였다. 작가는 이미 가장 큰 단서를 초반에 심어두었고,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놓았다. 호불호가 딱히 없을 긴장과 반전. 재미였다. 모두 이따금 숨을 참게 되는 이 소설을 즐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몰입하다가, 소설이란 매체의 기본값마저 되뇔 수 있으리라.
더 이상의 스포일러보다는 소설의 낯선 공법에 대해 조금 들여다보면 좋겠다. 재미가 보장된, 하나의 진실로 모여드는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그 구성은 도식적 뼈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전통적인 구조에 적확히 자신의 의식을 이식하고, 그런 재미의 흐름에 공명의 흐름을 중첩하는 세련된 방법론을 취했다. 표면은 이면을 은유하는 사적 방법론이며, 진실 또한, 작가의 의식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실체가 소설 초반에 무엇이었나 기억해 보고, 소설 종국에 무엇이 되었나를 목도해 보면, 이 소설의 본질을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전반에 끼얹어진 불안과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무수한 작은 몸짓들의 합일을 통해, 어떤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작가의 필력이 뭐랄까. 대단히 압도적이다. 우아한 문장과 화려한 묘사, 하나하나 손으로 꾹꾹 눌러쓴 듯한 문장들. 이런 작가는 최근에 더욱 귀하다. 언어만으로 아름다움을 달성하는 일, 그게 활자 예술의 특권이고, 영상이나 음악 같은 여타 다른 매체와 구분될 수 있는 소설이 지켜야 할 부분이라 느낀다. 어느 장을 펴도 아름다운 문장, 어느 부분을 읽어도 리듬이 느껴지는 문단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 <북두칠성의 복사점에 관한 사적 견해들>이 내게는 그랬다.
보기 드문 문장가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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