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이한 기질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진실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고, 실천보다는 상상을, 아는 상태보다 모르는 상태를 선호한다. 소설의 말을 빌려 ‘자기 혼자 되풀이하는 숨바꼭질’의 심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겠다.
그런 남자가 32살에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 가족도 사랑하지 못한 그에게, 사랑은 얼마나 큰 의미겠는가, 커다란 도파민이겠는가. 그런 격동의 감정의 힘으로 이 소설은 구동한다. 동해안의 황홀한 정경을 따라.
소설의 핵은 ‘진정하다’라는 말에 있다. 진실. 남자의 불안정한 심리는 어떤 무거운 진실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그 공포에 대한 트라우마가 평생 이어져 특이한 기질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버린 생모, 다섯의 새어머니, 무관심한 아버지, 그리고 생모와의 이별의 순간. 로드무비 속 남자의 트라우마의 전말이 조금씩 밝혀지는 것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진실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빼먹을 수 없겠다. 진실은 무엇인가. 그건 어쩌면 남자의 성격으로, 소설의 형식으로 상징화, 형상화되어 있다. 딜레마. 진실은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고, 확신한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망각이라는 단어에 부정적 뉘앙스가 있기는 하지만, 남자의 사연을 읽고 있으면, 망각으로 버텨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부러 망각하는 일, 혹은 사랑과 감정에 속는 일, 그건 어쩌면 진실보다도 삶을 지탱하는 데 능하다. 진실은 그 자체로 이미 딜레마니까.
그렇게 망각으로 버티던 남자의 정열적 사랑. 남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용기로, 믿어 의심치 않는 자기 감정으로, 또 150KM 속도의 사랑으로, 정면 돌파하는 단단한 마음이 이 소설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떻게 부수어지는지도. 판도라의 상자가 어떻게 열리는지도. 말끔한 플롯과 상상할 수 없는 반전, 아름다운 문장, 이야기의 순수 재미를 필두로 즐겁게 독서할 수 있었다.
‘나도 내 삶을 타인의 삶으로 대체하지는 않았나,’ ‘음험한 길을 망각하기 위해 혼자 어떤 술수를 부려댄 걸까.’ 여러 질문이 남는다.
또한 작가가 동성애적 코드를 사용하는 방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문제는 서사적 목적 아래 반전의 기능을 가지고 이야기에 복무 중이다. 여타 소모되는 퀴어문학과 비교해 보면, 작가의 방식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작가의 내공이 어떻게 쓰여야 올바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어떤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닌, 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진실에 대한 사유, 질문, 작가적 전략, 고급한 공법 이전에,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달리는 것의 황홀경을 선사해 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독자로서 우선 전달받은 것은 남자의 마음이다. 그에게 이끌려 작가가 펼친 길을, 문장과 이미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처럼 나도 산산조각 부서지는 경험까지도.
이야기 속의 감정을 그저 느끼는 것, 그걸로 아는 걸 다시 보게 되는 것, 논설과는 구분되는 것, 그게 소설이 아닌가, 새삼 생각되었다.
‘진실은 이토록 아픈 것이로구나. 또한 사랑도.’
복잡한 사유, 작가의 능숙한 기교나 형식 이전에, 이 정도로 감상을 정리하고 싶다. 그게 내가 독자로 느낀 것의 핵이자, 이 소설의 핵이고, 예술 작품의 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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