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우리는 모두 매저키스트이다. 인생은 레몬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니저가 열한 명에게 능욕당하는 스토리처럼 터무니없고 무자비하다.
"진짜 매저키스트는 능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받아들이는 거라고. 우리는 그런 걸 보여주는 거야."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어덜트 비디오 제작현장이 배경이다. 'AV'를 '인생'이라고 치환하면 어떨까. 아마 작가는 독자가 소설을 다 읽고 그러게 하길 바랐지도 모른다. 곧 이 소설은 터무니없고, 무자비한 일이 발생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생은 부조리 그 자체이다. 인생에 다가오는 고통의 원인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느 때고 예기치 않게 고통의 부조리를 겪게 된다. 이 소설은 카뮈의 철학적 견해에 닿는다.
야마다 유우코의 실존적 위기 상황, 그 현장에 존재했던 야니키는 결국 본인의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다. 그리고 야니키가 겪는 실존적 위기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의 위기이기도 하다. 결국 견뎌야 하는 것, 그뿐이라는 것.
주인공이 유우코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가 인상 깊다.
'머리칼과는 다르게 인간은 그렇게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인생의 고통과 인간의 존재는 분리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진다. 철학적인 주제를 어덜트 비디오 산업으로 보여준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이런 배경과 소재의 사용은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맞닿아 있다는 것,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제가 이 자체로 고통임을 보여준다. 의식 속에서 겪는 고통이 신체의 고통과 다를 수 없고, 우리는 신체가 있는 한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 신체가 기능하는 한 인생에 놓인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런 점을 이 소설 보다 제대로 전달한 소설이 있었던가.
몇 번을 곱씹게 되는 통찰력 있는 문장은 이 소설이 단순히 어덜트 비디오 업계를 소모하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소설이 아님을 독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잘 읽히고, 그 주제가 와 닿고 인상 깊은 것은 결국 작가의 탄탄한 필력에 기반한다. 어덜트 비디오 업계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현장성이 제대로 구현되었다. 또 인물의 대사, 앞서 밝혔던 통찰력 있는 문장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좋다.
이 소설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야마다 유우'가 아니라 <야마다 유우코의 마지막 어덜트 비디오>이니까. 야마다 유우와 야마다 유우코. 결국 사람은 자신일 수 없을 때 고통받는다. 또 실존적 이야기임은 야마나 유우코의 마지막 비디오 인터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간단히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 '야니키는 어떻게 어덜트 비디오 배우가 되었나?' 라고 한 줄 요약할 수 있다. 이어 플롯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가 휴와 나누는 대화, 그와 마담의 문제, 그가 K감독과 야마다 유우코와 엮인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확히 야니키의 내면에 이른다. 이러한 소설의 구성은 야니키의 실존적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야니키의 문제는 모든 인간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앞서 나온 모든 상황이 마지막에 야니키로 초점이 모이고, 그것은 곧 독자를 겨냥한다. 이 모든 걸 정확한 구성력으로 전달한 게 보인다. 완벽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여러 번 읽고 인생의 문제,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읽을 수록 좋은데 더 좋아지는 소설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소설 덕분에 내가 매저키스트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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