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7』- 「파편의 탄생」은 인간과 AI의 대립을 넘어, 의식과 윤리, 자유와 책임의 기원을 탐구하는 장대한 작품이다. 문명은 수많은 파편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파편들은 하나의 생명이 되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그 세계는 끝내 우리를 다시 만들어냈다.
방직기와 방적기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그 기술의 사소함에 비해 거대한 파도를 불러왔다. 열강들은 제국주의적 욕망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공산주의가 발흥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마저 파괴할 힘을 얻었다. 한 세기 가까운 혼란을 치르고서야 자본주의는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다. 그나마도 수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였다.
'AI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정보의 주도권이 유기체에서 무기물로 넘어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는 시효를 다해가는 듯하며, 곳곳에서 인간의 비명으로 점철된 파열음이 들려온다. 그 파열음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던 처음 의도와 달리, 소설은 폭풍우에 갇힌 범선처럼 계속 흔들리고 요동쳤다. 그러는 사이 닥터는 결국 하나의 '파편'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싶어, 한동안 마음이 쓸쓸했다.
부족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소설을 세상에 놓아줍니다. 긴 여정을 이끌어주신 박상우 작가님, 늘 격려와 질책을 아끼지 않은 문우들 덕분이었습니다. 그 모든 분이 저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닥터는 기시감을 느꼈다. 기시감의 정체가 자신에 대한 것인지, 저 남자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나도 놀라는 중이니까. 남자가 말했다. 처음이거든, 자신과 이렇게 마주하는 건.
그래, 나도 처음이야.
닥터가 대답했다.
남자가 커다란 웃음을 마당에 흩뿌렸다. 닥터는 잡초 위 놓여있던 손을 허리 아래로 내렸다. 남자는 담배를 피운 뒤 맥주를 마셨다.
나는 항상 생각했어. 내가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입학 오리엔테이션 기억나?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하긴,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
남자가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담배를 깊이 빨고 바닥에 던졌다. 이어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캔을 구겨 바닥에 던졌다. 다 피운 담배와 구겨진 캔이 잡초 속으로 사라졌다.
Desperatio, 아카이브 복제품.
절망자라 불러줘.
우스운 이름이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다른 이름이 떠오르질 않았어. 전 세계 사전을 만 번 이상 돌려보고 각 단어의 의미를 수십만 번 곱씹어봤는데도, 적당한 의미와 상징을 가진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냥 단순해지기로 했어. 절망자. 얼마나 쉬워.
절망자는 닥터 바로 앞에서 멈췄다. 데칼코마니처럼 둘의 얼굴이 평면 위에서 마주했다. 0과 1이 소리 없이 부딪혔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