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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으로

소설 장편

이순원 2021-08-05

ISBN 979-11-920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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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늘 위태롭고 버겁다. 때로는 하나의 어떤 실수로부터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것이 미래의 삶에 대해 어두운 그늘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것이 지금 딸의 시간이다. 현재란 본래 그렇게 불온하고 불안한 것이다.

엄마 역시 그런 현재성의 시간을 통과해왔다. 그 현재성 안에 그것 역시 더러는 불온하고 더러는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다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가난과 슬픔과 사랑의 이별조차도 평화롭고 안온하게 느껴진다. 지나간 시간은 늘 그렇다. 우리가 통과해온 시간이 아니라 너무 아득하고 안온하여 마치 신화 저편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봐야 25년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시간을 엄마가 살아왔고, 또 현재형으로 딸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 속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모녀의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이 살아오고 또 살아가고 있는 서로 다른 시간 속, 사랑의 금기에 대해서이다. 우리의 삶은 사랑에서조차 도처에 널린 게 금기의 가시밭이다. 그 가시밭 사이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왔고 또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 시절을 통과해온 이 땅 엄마들의 삶이 이 소설 속 엄마의 삶처럼 늘 따뜻했으면 좋겠다.

“나 여름방학 때 독서실에 다녔잖아. 일학기 중간고사 때부터……”

“그래.”

“그 독서실에 나오던 오빠였어. 대학생이었는데,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걸 물으면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랬어. 그 오빠는 영어 공부를 하러 나왔고. 그러다 친해졌는데, 우리 왜 지난 여름에 가족이 다 설악산 갔잖아. 이모네 하고.”

“그래.”

“그때 거기 가기 전에 바로 그랬어. 나 그때 독서실 열심히 나가고 했을 때.”

“윤희야, 엄마가 어디서 그랬는지 물어봐도 되니?”

그 말을 묻기 전과 묻고 난 후에도 두 번 생각하고 두 번 숨을 쉬었다. 아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이미 지나간 일, 아이를 위해서도 참자고 했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때에도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숨을 깊게 숨을 쉬었다.

“아니, 할게. 엄마가 묻는 거 다. 독서실이 있는 데가 9층 건물인데, 독서실은 6층과 7층에 있었어. 그런데 오빠가 그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보자고 해서……”

“누가 올라올까봐 무섭지도 않았어?”

“옥상에 가니까 저쪽에 환풍군지 아니면 다른 건지 이쪽하고 가려진 데가 있었어. 사람도 잘 올라오지 않고. 나도 그 오빠 따라서 처음 가봤어.”

“그 학생이 처음이었니?”

아이는 대답 대신 앞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 창작집으로 『첫눈』 『그 여름의 꽃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나무』 『워낭』 『벌레들』(공저) 등 여러 작품이 있다. 동리문학상, 남촌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lsw8399@hanmail.net​

1. 치명적인, 그래서 더 치명적인
2. 우리 마음속에 오래가는 상처들
3. 엄마의 첫사랑
4. 순결보다 더 중요했던 것
5.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6. 싫어, 라고 말하지 못했네
7. 오빠의 여자
8. 독처럼 스며드는 금기의 뒤끝들
9. 빛과 그늘의 그림자들
10. 인생이라는 것, 혹은 산다는 것은
11. 병실에서 모녀가 말했네
12. 그리고도 가야 할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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