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코미디와 SF적 상상력이 결합된 색다른 단편소설. 외계인 관찰자를 내세운 발상의 참신함, 분석적 어휘와 구어체의 대비를 통한 문체적 통제력, 그리고 표면적 코미디 아래 감춰진 부성/침묵/소속에 대한 진짜 슬픔을 동시에 부각시킨 작품.
인간을 관찰하러 온 외계인은 정작 자기 자신을 관찰한 적이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를 꿈꾸던 그가, 처음으로 길게 말하고 싶어진 밤.
“나는 외계인이다. 그런데 왜 자꾸, 사람이 그리운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너 외계인이지?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너 그거 감시하러 왔지?”
나랑 십 년 이상 알고 지낸 사람이 했던 말이라 당시에 꽤 당황했다.
“어…, 어…, 아니, 나 외계인 아닌데.”
그때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부인했더라면 이 소설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뭐 어떡해.
대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너무 신기하고 이상했다.
정보도 없고, 결론도 없고, 심지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말을 왜 계속하는 걸까.
인간들이 왜 말을 이렇게 많이 하는지는 늘 나의 관심사였다.
그렇게 관찰하다 보니, 쓸데없는 말 속에 숨겨진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동안 수집한 관찰 기록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일단은 소설이라고 해두는 편이 여러모로 안전할 것 같다.
받는 사람: ceo@spacex.com
일론, 나는 내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비록 지구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화성으로 이주할 종족을 선별하고 데려가기 위한 관찰 임무를 수행 중인 개체라고 확신해. 우리가 화성으로 데려갈 지구인들의 노동력과 사회적 특성을 분석하는 것도 그 임무의 일부고. 네가 이 화성 이주 프로젝트의 리더 맞잖아. 99퍼센트 그렇게 믿고 있는데 1퍼센트의 확신이 부족해. 맞다면, 맞다고 해줘.
메일을 발송한 직후, 거의 같은 시각에 일론은 자신의 X 계정에 한 문장을 게시했다.
“I’m an alien.” (나는 외계인이다.)
그 문장은 누구에게나 농담처럼 읽힐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뉴욕 증권가 투자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그 뜻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나 말고는 그 문장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외계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일론이 나에게 한 말이니까.
그 이후로 나는 내가 관찰한 인간의 특성들, 특히 화성 생태계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들을 선정하고 연구해 주기적으로 일론에게 전달했다. 일론은 보안이 취약한 메일로 직접 회신하지 않았다. 대신 X에 짧고 불완전한 문장을 남겼다. 당일에 반응이 나올 때도 있었고,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난 뒤에야 관련된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 유행하는 밈을 올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완전한 침묵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증권가의 사람들은 그의 애매모호한 트윗을 어떻게든 테슬라 주식에 갖다붙여 의미를 부여하려 했지만, 억지스럽고 작의적인 해석밖에는 될 수 없었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보라고 남기는 글이 아니었으니까.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짐』『X에서 늙어 죽은 최초의 인간에 관한 보고서』『롯소코 도파민네이션』『꼬리 치지 마라』 『내 인생의 재생속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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