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역사적 시간의 퇴적을 ‘왕릉’이라는 상징을 통해 겹쳐 보여주는 소설.
기억의 단절과 반복을 서사 구조로 활용해 현실과 과거,
개인사와 역사적 시간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인간 존재의 고독과 시간의 잔존성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무언가를 찾아내 기록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느 농부가 밭에서 일하다 이상야릇한 물건을 발견한다. 일꾼들이 그곳을 파보니 사기그릇이며 장신구가 쏟아져 나온다. 조심조심 묵은 때를 벗기면서 알게 되는, 까마득한 시간 속을 거닐었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 땅과 친밀히 지내면서 그런 발견과 기록을 일삼으면, 그 유물들에 얽히고설킨 사연이나 시공간을 살피다 보면 왠지 내 삶이 조금은 빛나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났다.
경주에 보금자리를 얻은 그해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고고학 강의를 들었다. 일요일엔 답사를 떠났다. 5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어째 조금도 질리지 않는 희한한 공부다. ‘깊고 푸른’ 유물과 유적을 마주할 때면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곤 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게 어떤 모양새로 탄생하든 소설이란 그릇에 담아야만 나만의 보물이 되리라는 조바심이 생겼다. <왕릉에서 보낸 일주일>은 그 과한 욕심의 첫 번째 소설이다.
공할머니가 내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뜻밖에도 화면에 떠 있는 건 유튜브 영상이었다. <한반도 고대사의 판도를 바꾼 공주 무령왕릉>이란 제목이 도드라졌다. 멈춰 있는 영상을 터치했다. 까만 배경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1971년 7월 8일 무령왕릉 발굴조사 음성기록’이란 글씨가 화면 아래 작게 새겨져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사람들의 목소리가 뭉개진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떤 점잖은 목소리가 뭔가를 보며 또박또박 읽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의 볼륨을 최대한 키웠다.
―영동 대장군 백제 사마왕
―계묘년 5월 병술사 7일 임진
―저기! 어, 저기! 윤기사! 연대표 가져오라고 해!
―우리나라 무덤에서 아주 확실한 연대 왕을 가진 것은 처음이에요
―그것도 왕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 이게 처음입니다
―이거 참 기막힌 일이 나왔어요
―무슨 왕이야 526년 무령왕, 무령왕이야
―연대가, 돌아간 해가 523년
―그러니까 간추려서 얘기하면 백제 무령왕의 능이다. 25대, 25대!
나는 4분 42초 영상을 계속 되돌려 봤다. 무덤의 주인을 마주했던 순간의 긴박함과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감격에 겨워하고, 감정이 북받치고, 흥분하며 떠드는 목소리들이 거실을 꽉 메웠다. 그해 여름의 발굴 현장을 기웃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거실이 방금 세상에 드러난 능(陵) 같았다. 숱한 시간의 입자가 켜켜이 내려앉은 살림살이는 함께 묻힌 유물처럼 보였다. 공할머니도 나도 무덤 속 여자들이었다. 무령왕릉의 발견은 한반도 고대사의 판도를 바꾼 중요한 전환이었다고, 영상 속 해설자가 말했다.
“잔칫집 마냥 들썩들썩허지? 정봉이가 내 휴대폰에 담아놓은겨. 심심헐 때 들으라나. 갸가 칠십일년 생이여. 내가 지를 낳은 해에 왕의 무덤이 발견됐담서 우쭐대드라. 그기 지랑 무슨 상관이라구. 그 무덤이 공주에 있는디 가봤냐? 난 두 번인가 가봤는디 왕은 다르더만, 웅장하드라. 가끔 이걸 듣고 있으믄 나도 이렇게 발견될랑가 싶어. 죽은 나를 누가 발견해 줄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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