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삭제’라는 행위가 타자 통제와 자기기만으로 전도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심리 서사 소설.
타자를 삭제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동시대 인간의 감각 구조를 해부한 보고서.
존재가 데이터처럼 취급되는 시대의 존재론적 불안, 21세기 감각 체계와 권력 구조의 징후를 예리하게 묘파한 작품.
책상 위 물건들을 손에 닿기 쉽게 이동시키고, 보기 좋게 매만집니다. 내 마음대로 배치하고 추가, 삭제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쉽게 방 안의 물건과 눈앞의 것들을 정리합니다. 이 쉬운 반복 속에는 어려운 것을 회피하는 마음도 더러 있었습니다.
어려운 것에 이제 계속 도전하자는 응원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썼습니다.
주인공의 손끝에 닿은 찻잔이 오래 오래 온기를 품기를 바랍니다.
선이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포크를 집더니 아까 먹다 남은 마들렌을 잘랐다. 반으로 나눈 걸 한 번 더 잘랐다.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고 이내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사를 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요즘에도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 말한 적 있죠?”
“그 스토킹하는 사람? 증거는 있어요?”
선이가 블라우스 끝자락을 계속 접었다 폈다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술 마시면 그 짓을 하려고 해서… 제가 집을 나왔어요.”
나는 식어버린 찻잔을 들었다. 볼록한 표면에 새겨진 잔의 문양들은 조금 대칭이 어긋나 있었다. 나는 엄지로 그 문양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놀라셨죠.”
선이의 옆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걸 보고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잔의 입술이 닿았던 가장자리의 금박이 조금 벗겨진 것을 보았다.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훑으며 이 잔을 언제 구입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실망 시켜 드려 죄송해요.”
선이는 포크로 마들렌을 자르고 또 자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루가 된 마들렌을 접시에 꾹꾹 누르듯이 움직였다. 이제 선이는 포크를 디저트 접시 위에 세워 들고 똑똑똑 소리를 내다가 멈췄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