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잠깐 다녀올게: 2024 수상작가 자선작

현진건문학상 단편

김설원 2025-11-04

  • 리뷰 0
  • 댓글 0

1,000 코인

  • talk
  • blog
  • facebook

2024 현진건문학상 수상작가 자선작

수란은 오늘 ‘외연도’에 간다. 서해의 가장 끝에 자리한,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연기에 가린 듯 하다는 섬. 올해 마흔 아홉 살, 쉰 살이 되기 전에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이었다. 때문에 가장 빛나는 날짜를 잡았다. 날이 푹해서 금방이라도 개나리가 필 것 같고, 그만큼 따스하니까 옷을 가볍게 입어야 하며, 이런 이상기온이 내일 모레까지 이어진다는 기상캐스터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면서. 숙소도 일부러 ‘햇살민박’으로 정했다. 외연도에 가면 벌써 피었다는 동백꽃도 보고, 둘레길을 걸으며 산과 바다에 간절히 부탁도 하고, 입소문이 자자한 해삼내장무침도 먹어야지. 그리고는 이른 새벽 혼자 남몰래 육지로 향하는 낚싯배에 오를 것이다. 오늘 수란은 쉽게 갈 수 없으나 고립된 섬은 아니라는 외연도로 향한다, 웨스트프론티어호를 타고 엄마와 단둘이.

어쩌다 보니 아들의 역할까지 떠안아버린, 외롭고 가련한 장녀들을 생각하며 썼다. 그 장녀들이 단단한 굴레를 벗어나 당분간만이라도 자유롭게 날아다니길 바라지만 그녀들은 이내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

“눈발이 날린다.”

엄마가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창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면서 오늘 배가 뜰지 모르겠다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뺑덕어멈이 “오늘 결향이에유”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강풍이 부는 것도 아닌데 무슨 결항이에요?”

수란이 창밖을 내다보며 대꾸하자 뺑덕어멈은 세월호 사건 이후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배가 뜨지 않는다며 손을 내저었다.

“옛날에는 선장 마음대로 했는디 지금은 그랬다간 큰일나유. 위에서 내리는 지시를 철저히 따라야 한대유.”

“내일은 뜨겠지요?”

“모르지유. 배가 이삼일씩 묶여있는 건 보통이니께. 예전에 어떤 손님은 일주일이나 꼼짝 못 했슈.”

“여객선 말고는 나갈 방법이 없나요?”

“낚싯배를 부르거나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가는 방법이 있긴 해유. 내일도 결항이면 낚싯배를 알아봐 줄까유?”

“고기잡이배는 뭐예요?”

“여긴 집집이 배가 있어유. 이 정도 날씨라면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도 하니께 그걸 얻어 타면 돼유. 개인이 배를 모는 건 상관 안 해유. 그나저나 나도 큰일이네. 육지로 약을 타러 가야 허는디.”

뺑덕어멈과 엄마는 약을 매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심장까지 약해진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약을 한 움큼씩 먹었다. 복용을 중단하면 몸에 바로 이상이 생기는,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동반자였다. 뺑덕어멈이 매번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가 외연도의 무엇에건 정을 붙여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천만다행이었다.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은빛지렁이」 당선

200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 

2019년 제1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

2024년 제16회 현진건문학상 수상​ 

잠깐 다녀올게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