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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연습

소설 단편

김성호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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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초안은 원래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사물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였다. 제목도 ‘좀비 연습’이었고. 그러다 지금의 내용에 이르게 되르기까지 1년여의 시간 간극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조금 물화(物化) 된 걸까.

믿지 않음을 믿고, 어쩐지 죽음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이들의 이야기다. 어둡고 비관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새끼 손가락 하나를 남겨두었다. 어떠한가. 당신의 새끼 손가락은 잘, 구부러지나. 살아있다는 확신이 드나. 나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려는 의지가 조금은 느껴진다. 내 안이 구부러진다.

103동 앞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는 기지개를 켰다. 다시 한번, 이제는 정말 확실한 느낌이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곧바로 무언가가 그를 덮쳤다. 위는 인도에 쓰러졌다. 자신을 덮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는 욱신거리는 몸을 황급히 일으켰다.

사람.

그 정체는 사람이었다. 위는 중얼거렸다. 사람이 왜 하늘에서. 아니 하늘이 맞나. 그는 재차 고개를 들었고, 높지 않은 층의 열린 베란다 창이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저기서 사람이 떨어졌나.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길에 나뒹구는 사람을, 여자를 바라보았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위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페이스 아이디로 잠금화면을 해제하기 위해 일그러진 얼굴을 한껏 편 뒤 119 번호를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여자의 손이 그의 핸드폰을 건드려 떨어뜨렸다. 여자는 신고하지 마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여자의 말을 알아들었다. 똑똑히. 그래서 그대로 행했다. 신고하지 않고, 여자를 일으켜 세운 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멍청하게도. 무슨 일이냐고.

여자는 죽으려고 했어요, 말했다.

2025-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kimwriter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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