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추천작
이성아: 고양이는 건들지 마라 / 박혜원: 학구적인 물고기 / 노정완: 찬란한 수치 / 고경숙: 모래톱 / 김인정: 빈 상자
2025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에 나오는 김첨지의 대사는 수많은 위대한 작품 속 명문장이 그러하듯이 시대를 초월하는 울림을 가지고 있다. 현진건 선생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억세지 못하고 눈물이 많다. 악역을 맡은 사람조차 진정 밉지는 않다. 그 시대를 보는 선생의 눈이 늘 눈물에 젖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선생의 작품을 읽을 때는 미리 마음이 아팠다. 언감생심 선생과 나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선생보다 훨씬 좋은 시대를 살면서도 내 시대를 연민하는 마음이 적다. 연민은 적게 하고 불만과 적의는 가득해서 글이 거칠고 모가 져 있다. 선생을 기리는 상을 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줄 알지만, 앞으로 한 걸음 뗄 때마다 이 상의 무게를 의식하겠다는 다짐으로 우선의 염치를 차리려 한다. (현진건문학상 수상소감)
2025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작

당선 전화를 받던 날, 하루 종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불에 탄 나무와 마을이 있던 이방의 땅을 지났습니다. 꽤 많이 걸었고 목이 잠기고 열이 올랐습니다. 폐허가 된 산과 나무를 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어요. 목적지를 향해 가던 길이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불기둥이 자작나무 숲을 집어삼켰고 폐허가 된 마을은 재건 중이었어요. 나무는 땅 위에 세로로 꽂아 놓은 죽창처럼 불에 그을린 몸채 그대로 서 있었어요.(중략)
문학은 제게 불에 탄 자작나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에 타버린 줄 알았는데 살아남아 나를 부르고 다가갈 때면 안아 줍니다. 내가 안은 줄 알았는데 뒤돌아볼 때면 가슴 안이 뜨거워집니다. 불에 그을린 몸채로도 안간힘을 다해 나를 안아 주는 그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 그 이름을 뭐라 부를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작나무만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진건신인문학상 당선소감)